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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전주교구,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적 기념 학술심포지엄‘
 paxkorea    | 2013·12·13 14:38 | HIT : 3,347 | VOTE : 687
신시도’ 최양업 신부가 첫 조국땅 밟은 곳 안내판 설치 행사도 가져

전주교구는 최양업 신부와 신시도의 인연에 대한 교회사적 재발견과 추모 방안을 논의하고자 11월 30일 오후 2시 신시도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적 기념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안내판이 설치된 곳은 최양업 신부가 중국에서 부제서품을 받고 1847년 고국 선교를 위해 탑승한 프랑스 배가 거센 풍랑으로 난파돼 표류하다 도착한 장소로 최 신부는 그 곳에서 30여 일간 천막을 치고 생활하며 조선 신자들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관원들의 감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교구는 이후 안내판이 설치된 곳에 표석을 설치해 신시도에 서린 최양업 신부의 신앙문화유산을 기념하고 새만금을 찾는 이들에게 종교적, 역사적 의미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할 예정이다.
한편 군산시립도서관 새만금드림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소장은 ‘최양업 신부와 신시도’라는 주제로 당시 부제였던 최양업 신부의 신시도에 입도와 체류하는 과정을 다뤘다. 차 소장은 신시도는 최양업 신부가 귀국로 탐색 과정에서 처음으로 조국 땅을 밟았던 곳이자, 한 달 동안 체류하면서 완전한 귀국을 염원한 의미 있는 장소라 평했다.

호남교회사연구소장 이영춘 신부는 “최양업 신부의 행적을 전체적으로 살펴야지 단순히 귀국과 체류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기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며 “이번 학술심포지엄이 끝이 아니라 이후로도 최양업 신부의 전라도 행적에 대한 연구와 발표를 통해 교구민들의 관심을 이끌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13-12-15, 제2874호, 4면]
김진영 기자 (nicolao@catimes.kr)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적지
(아래 글과 사진은 '서당봉'(http://blog.daum.net/cheolmo/15859895)에서 인용한 것임)

우리나라 사람으로 두번째 신부였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부제서품을 받고 그리도 그리던 최초로 고국땅을 밟은 곳이 군산시 신시도임이 밝혀져 신시도 현장에 작은 표석을 설치하였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호남교회사연구소와 천주교 전주교구 쌍백합회가 주관하고 전라북도 통합 로사리오회와 군산시가 후원한 '최양업 신부 신시도 행적기념 심포지엄'에서 밝혀졌다.
송민찬 (사)쌍백합 책임연구원이 진행한 심포지엄에서 발제에 나선 차기진 양업교회사연구소장은 '최양업 신부의 귀국로 탐색과 신시도 체류에 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박재길 (주)쥬스컴퍼니 컨설팅 디렉터는 '최양업 신부와 새만금 관광'이라는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차기진 연구소장을 최양업신부의 서한, 일성록, 헌종실록, 프랑스함대 사령관 라 피에르 등의 보고서 자료를 근간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표하였다.

"1836년 마카오로 신학도의 길을 떠난지 1842년 7월 마카오를 떠나 고국 땅으로 돌아 오기 위해 여러번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1847년, 1839년 기해박해시 세명의 프랑스 선교사를 참수한 것에 대한 항의 서한에 대해 조선국의 답신을 받으로 오는 프랑스 함대 통역관으로 매스트로 신부와 함께 동승한 최양업 신부는  부제의 신분으로 고국땅 밟기를 고대하며 1847년 8월10일(음력 6월 30일) 생면부지의 고군산 부근에 도착하였으나 수심이 낮은 탓에 그만 글로와르호와 빅토리외즈호가 동시에 좌초되고 말았다.

이에 당시 함대 사령관이었던 라 피에르는 8월 12일 일단 북서쪽 2마일 섬(현재의 신시도 배수갑문 안쪽으로 추정됨)에 560여명의 수병을 상륙토록 하였다. 최양업 신부는 총 6번의 귀국 시도를 했는데 신시도 방문이 4번째 시도이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이 곳을 관할하던 만경현 고군산진을 통해 만경 현감으로, 전라 관찰사로 그리고 조정으로 보고하게 되고 전라감사는 만경 현령, 고부 군수, 위도 첨사, 여산 부사, 익산 군수 등으로 하여금  물과 식량, 배 등의 필요 물품을 제공하되 이들의 행적으로 지속적으로 감시하게 된다.
한편 프랑스함대는 대형 보트를 상해로 보내 구조 요청을 하게 되는데 이를 접수한 영국 다다러스함 등 3척의 군함이 그해 9월 5일 신시도 현지에 도착하게 되고  일주일후인 9월 12일(음력 8월 4일) 프랑스 수군을 테우고 신시도를 떠나게 되는데 이때 동승했던 메스트로 신부와 최양업 부제도 떠나게 되어 이로써 30일간의 신시도 체류일정을 마치게 된다.
한편 최양업 부제는 이 30일 동안 프랑스 함대와 조선 조정간의 통역을 맡아 하면서도 시시탐탐 현지인과 접촉을  통해 천주교 신자를 접촉하러 노력하는데 하루는 고군산진(현 선유도) 고을의 관원들에게 협상을 하고 돌아 오면서 몇명의 조선인들을 만나 '예수님과 마리아를 아는냐?고 물으니 '알고 말고요 잘 압니다'라는 답을 얻었는데 그들의 가족 모두 대공소(현 부안군 변산면 석포리의 대소공소)에 살고 있다는 답을 얻는 등 성과는 있었으나 더 이상은 관원들의 감시로 인해서 신자들과 접촉은 이뤄지지 못하고, 영국 함대가 와서 프랑스 수병들이 철수 할때도 최양업 부제는 조선에 남기를 간청했으나 당시 함대 사령관이었던 라 피에르는 남아 있을 경우 생명의 위험이 있다하여 거절하는 통에 천신만고 끝에 밟은 조선 땅 고국을 등지고 불가피 상해로 함께 철수 하게된다.
이로써 신시도는 최 신부가 귀국로 탐색과정에서 처음로 조국 땅을 밟았던 곳이고, 한 달동안 체류하면서 조선으로 완전한 귀국을 염원하던 의미있는 장소이며, 비밀리나마 최양업 신부가 조선신자와 상봉할 수 있었던 만남의 장소였고,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매스트로 신부가 조선에 입국한 장소이기도 하다"는 내용의 발제였다

따라서 그동안 최양업신부의 행적이 군산에도 있음이 새롭게 정리되었고 고국으로 영원히 돌아온 1849년 이후 우리 전북지역에 뿌려 놓은 최양업 신부의 믿음의 씨앗을 함께 엮어서 구슬로 꿰어 놓는다면 한국 교회사는 물론 전북의 교회사 연구에도 크나 큰 결실을 또 하나 맺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도청로사리오가 서둘러서 개최하게 된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신시도 행적기념 심포지엄'은 큰 의미가 있어 보인다.
또한 새만금개발과 연계한 또 하나의 종교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신자에게는 묵상의 장소로, 비신자에게는 볼 거리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최양업 신부가 태어났던 충북 청양의 다락골 성지 인근 새터, 부친을 따라 숨어 들어 가 마카오 신학생으로 떠났던 안양시 병목안 담배골의 수리산 성지, 1949년 귀국후 본격적으로 사목의 중심지로 삼았던 베티성지, 11년 6개월동안 충청도 등 5개도의 사목 생활을 하면서 지쳐 끝내 선종한 문경 진안리 성지, 그리고 지금 조용히 잠들어 계시면서 믿고 있다고 떠들어 대는 오늘날의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배론 성지에다 한국 교회사의 또 하나의 진주를 찾아 낸 부제의 몸으로 그리운 고국 땅을 밟은 첫 곳, 신시도, 그래서 이번 행적기념 학술 행사의 의미가 크다.











새전북신문 기사          

최양업신부 한국 최초 입국지 군산시시도 기념탑 부근으로 밝혀져
  

한국 천주교회의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신부가 중국에서 수학 후 한국 최초 입국지가 군산 신시도 기념탑 부근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고 있다. 천주교 전주교구(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주관하고 호남교회사연구소, 쌍백합이 주최, 30일 오후 3시 30분 군산시립도서관에서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양업신부 신시도 행적 기념 학술 심포지엄' 에서 이같이 밝혀졌다.

'최양업신부의 귀국로 탐색과 신시도 체류에 관한 연구'를 발표한 차기진 천주교구 양업연구소장은 "최양업신부가 중국 마카오 신학교를 떠난 것은 1842년 7월 17일이었다"며 "그는 1842년부터 1848년까지 7년 동안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귀국로를 탐색하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여섯 번째 탐색 여정 끝에 고국인 조선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차소장은 " 이는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지 13년 만으로, 그의 신치도(신시도) 입도와 체류는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네 번째의 귀 국로 탐색 여정(첫 번째 해로 탐색)에 해당한다"며 "이때는 최신부가 아직 부제였던 시기에 매스트르 신부와 함께 라 피 에르가 이끄는 프랑스 함선 두 척, 즉 글로와르호와 빅토리외즈호를 타고 1847년 7월 30일(음력 6월 19일) 광주 주강 입구의 황포를 떠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이후 순조롭게 항 해를 계속하던 프랑스 함대는 8월 10일(음력 6월 30일) 고군산진에 속하는 신치도 해양에 도착한 뒤 좌초됐다는 것. 이에 그는 8월 12일 매스트르 신부와 함께 프랑스 해군들을 따라 좌초된 곳에서 ‘북쪽 혹은 북서쪽으로 2마일(약 3.2km)’ 혹은 ‘10리쯤’ 떨어져 있는 섬에 상륙해야만 했으니, '일성록'에는 이곳이 ‘고군산진 신치도(현 신시도)의 신치산 아래 남쪽 모래사장’으로 나온다.

그와 매스트르 신부가 입도한 신치도 남쪽 모래사장의 위치를 추정해 보면, 좌표상으로 '북위 35도 81분/동경 126도 47분 부근'으로, 바로 이곳에서 1847년 8월 12일부터 9월 12일(음력 8월 4일) 상해로 떠날 때까지 정확히 한 달 동안 체류, 프랑스 해군과 조선 관리들 사이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바로 그곳이 신시도 기념탑 부근이라는 것.

그렇게 해 최신부는 1847년 9월 9일(음력 8월 1일) 부안 대공소의 신자를 비밀리에 만날 수 있었고, 그에게서 ‘9월 11일에는 한 신자가 배를 가지고 신치도로 올 것’이라는 희망의 말도 들을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신자가 신치도로 오기 전에 최양업 부제는 천신만고 끝에 밟은 조국 땅을 등지고 상해로 가야만 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행사는 이병호 천주교 전주교구장위 인사말에 이어 문동신 군산시장의 축사가 있으며 1부 발제로 차기진 양업연구소장의 '최양업신부의 귀국로 탐색과 신시도 체류에 관한 연구' 발제와 박재길 ㈜ 뉴스컴퍼니아 박재길이사의 '최양업 신부와 새만금'라는 발표가 각각 있었으며, 이영춘 호남 교회사연구소장과 이흥재 추계예술대학 문화예술경영대학원장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2013년 12월 01일 (일)  이종근 기자  jk74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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