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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중림동 성당
 paxkorea    | 2004·10·31 14:58 | HIT : 4,823 | VOTE :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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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
      
    첫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애착은 유별나다. 수많은 식당 간판에 붙어있는 '원조'(元祖)는 첫번째에 대한 집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교회에서 봐도 우리나라 첫 사제가 김대건 신부라는 것은 대부분 알지만 두번째 사제가 누구인지 아는 신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처음 세워진 성당은 어디일까.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열에 아홉은 명동성당을 꼽겠지만 실은 서울역 서쪽 맞은 편 언덕에 보일락말락 숨어있는 중림동성당(옛 약현성당)이다. 지금으로부터 111년전인 1892년에 세워진 이 성당이 1898년에 완공된 명동성당(옛 종현성당)보다 6년 앞서 이 땅에 등장한 한국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인 것이다.

    약현(藥峴)은 원래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 약초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 순교터인 서소문 순교성지가 발 아래 내려다뵈는 약현 언덕에 본당이 설정된 해는 1891년. 당시 서울에 하나뿐인 종현본당만으로는 늘어나는 교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종현본당 주임 두세(Doucet) 신부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본당 신설을 요청함에 따른 것이다. 당시 서울에서는 두번째 본당이었으며, 전국적으로는 열번째였다.

    초대 주임 두세 신부 감독 아래 종현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를 맡아 그해 공사에 들어간 약현성당은 이듬해 1892년 12월 완공되었는데, 프랑스에 주문한 종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복식은 해를 넘긴 1893년 4월 뮈텔 주교 집전으로 거행됐다. 뮈텔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제 서울 문밖 중심에 성당이 우뚝 솟았다. 그것은 아담하며 또한 성당다운 성당으로서는 한국 최초이고 유일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벽돌을 쓴 성당은 길이 32미터, 폭 12미터, 종탑 높이 22미터의 120평 규모였다. 이후 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을 올렸고, 1921년에는 성당 내부 칸막이를 철거하는 한편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교체하는 내부 개조공사를 벌였다. 1974년부터 2년여에 걸쳐 대대적 해체 복원 공사를 실시한 중림동성당은 77년 국가 문화재(사적 제252호)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중림동성당은 1998년 2월 술에 취한 한 행려자의 방화로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벽돌 구조물과 앙상한 잔해만 남긴 중림동성당은 1년 6개월여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2000년 9월 다시한번 축복식을 가졌다. 복원 공사는 성당 건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따른다는 원칙으로 74년 대대적 보수 당시 변형된 부분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성당이 화재 전 성당보다 건립 당시 성당 원형에 좀더 충실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렇다면 건립 이후 한국교회 건축 모델이 된 중림동성당의 면면을 살펴보자.

    먼저 중림동성당은 소박하다. 흔히 '옛날 성당'하면 떠오르는 모습 그대로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고딕적 요소가 극히 적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중림동성당은 대체로 아담하면서도 번잡스러운 장식이 없어 장중한 느낌을 준다.

    성당은 기본적으로 몸채에 곁채 2개가 딸려 있는 라틴 십자형 삼랑식(三廊式) 구조다. 성전 가운데 두 줄 돌기둥이 있고, 기둥 바깥 양쪽 신자석 창은 둥근 아치로 처리돼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둥근 천장 부분. 가운데가 가장 높고 주위가 점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이다. 제대 좌우 신자석 정면에는 성 모자상과 성 요셉상을 모셨으며, 좌우 벽에는 다소 이국적 면모의 14처가 걸려 있다. 저녁 햇살이 제대 뒷면 3개 유리화를 통해 성전 안을 비추는 광경은 잠시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할 만큼 아름답다.

    교회건축 전문가 김정신(스테파노, 단국대) 교수는 '약현성당의 건축사적 의의와 보존 방향'이라는 논문에서 중림동성당을 이렇게 평가한다.

    "1900년 이전 몇 안 되는 서양식 건물 중 일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서양에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명동성당과 함께 한국 근대 건축사의 주요한 서두를 점하고 있다. 명동성당만큼 완전하고 순수한 서양 중세 양식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명동성당 건축에 앞서 교회 및 서양 건축의 핵심 요소들이 채택되고 시험되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약현성당은 이후 교회건축 뿐 아니라 병원, 학교 등 초기 서양식 건축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명동성당이라는 그늘에 가려 신자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중림동성당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드물다. 서울역에서 가깝고, 전철로는 2, 5호선 충정로역에서 가톨릭출판사 방향으로 걸어내려가면 5분 거리에 있다.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조용하고 아늑한 데가 있었나'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성당 구내 또한 여유롭다. 잠시 바쁜 일손을 놓고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신자라면 꼭 한번 찾아가 볼 만하다.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 품은 신앙의 모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인 가톨릭출판사와 지난 봄 문을 연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그리고 서소문성지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신앙을 기리기 위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

    중림동성당과 한 울타리를 쓰고 있는 교회 기관들이다.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를 뿐 이처럼 다양한 문화공간과 함께 있는 중림동성당은 서울대교구 가톨릭 문화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에서 나열한 기관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80년대 이후부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이곳에서 어떤 역사가 쓰여졌을까.

    중림동본당은 설립 당시 가까이는 경기도 광주, 과천, 양주로부터 멀리는 개성, 황해도 백천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했다. 초대 주임 두세(Doucet) 신부의 탁월한 사목활동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교회건물인 성전,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 세번 울려퍼지는 종소리 등이 장안에 화제가 된 덕분에 초창기 중림동본당은 놀라운 교세확장을 이룩하며 서울대교구는 물론 지금은 수원·인천교구 소속이 된 수많은 본당들의 모태가 됐다.

    중림동본당이 19세기말 설립 초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교육과 의료 사업 분야에서 한 축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5000여평에 이르는 본당 일대가 원래는 학교와 병원 자리였던 것이다.

    초창기 선교사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두세 신부도 일찌기 교육 사업에 관심을 갖고 1901년 가명(加明)여학교를, 1907년에는 약명(藥明)남학교를 세웠다. '가명'은 두세 신부 세례명인 가밀로의 한자식 표기. 두 학교는 1909년 학교 건물을 크게 증축하면서 가명학교로 통합되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 때까지 우리나라 초등교육 발전에 큰 몫을 차지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3월 중림동본당은 가명학교 건물을 기반으로 성 요셉 병원을 설립한 데 이어 같은 해 5월 성 요셉 간호 고등기술학교를 세웠다. 병원은 1955년 10월 가톨릭대 의학부 부속병원으로 지정된 후 61년 극빈층 환자들을 위한 실비(實費)병원으로 전환했다. 성 요셉 병원은 명동 성모병원에 자선 진료소가 정식으로 문을 열게 됨에 따라 1974년 폐원하면서 성모병원으로 흡수된다.

    성 요셉 간호 고등기술학교는 1962년 1월 가톨릭대 의학부 부속 간호학교로 승격돼 다음해 2월 중림동본당 구내에서 철수할 때까지 모두 8회 입학식과 5회 졸업식을 가졌다. 당시 명동성당 구내에 있던 가톨릭대 의학부로 편입된 간호학교는 63년 12월 가톨릭대 의학부 간호학과로 다시 승격되면서 한국 가톨릭 간호사업의 모태로 급성장한다. 명동성당이 가톨릭대 의과대학 출발지라면 중림동성당은 가톨릭대 간호대학의 산실인 셈이다.

    중림동성당은 한국교회 첫 서양식 교회 건축물일 뿐만 아니라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무려 44위의 성인을 낳은 서소문 순교성지를 품 안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니는 곳이다.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성인을 배출한 성지의 본당답게 순교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남다르다. 1991년 본당 설정 100주년을 맞아 성당 구내에 건립한 서소문 순교자 기념관은 순교 성인들의 얼을 본받기 위한 대표적 노력 가운데 하나. 이곳에는 현재 성인들 유해를 비롯해 각종 신심서적과 교회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던 서소문 성지에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지고 또 순교자들을 현양하기 위한 기념관도 마련됐지만 중림동본당 주임 원종현 신부는 서소문 성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교회 관심도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중림동본당이 관할하는 서소문성지가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라는 점을 꼭 일깨우고 싶습니다. 순교자들이 죽음으로 보여준 신앙이 없었다면 성전은 그저 건물에 불과할 뿐입니다. 서소문 성지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이 다른 순교성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순교자 현양에 대한 원 신부의 각별한 애정과 노력은 요즘 한달 평균 4500여명의 외부 신자들이 서소문 성지를 순례하고 또 중림동본당 주일미사에 참례하는 것으로 열매를 맺고 있다. 원 신부는 앞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미사를 순교자 현양 미사로 봉헌하고 순교자 기념관을 적극 활용함으로써 중림동본당을 점차 순교 신앙의 중심지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중림동본당은 올해 3월 성당 구내에 약현 피정의 집을 세우고 또 5월에는 인근 직장인들을 위한 낮미사를 신설하는 등 세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이는 성당이 도심 한복판에 있다는 이점을 복음화 도구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본당 측의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 활동들이다.

    서울 한복판 약현언덕에 숨어있는 작고 고즈넉한 중림동성당. 100여년 전 이곳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성당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옛 신자들을 한번 떠올려보자. 그리고 성당 바로 앞 서소문 성지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순교자들의 순교 장면을 마음 속 깊이 그려보자. 역사 속 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신앙인에게 중림동성당은 결코 작은 성당이 아닐 것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사진설명)
    1. 지금으로부터 111년전인 1892년에 완공된 중림동성당은 한국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로, 이후 교회 건축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사적 제252호 중림동성당 전경.        
    2. 중림동성당 내부. 몸채와 곁채 2개가 딸려있는 라틴 십자형의 삼랑식 구조다.
    3. 종각의 첨탑이 세워지기 이전 1900년경 중림동성당 전경. 초대 주임 두세 신부의 탁월한 사목활동에 힘입어 초창기 중림동본당은 놀라운 속도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4. 서소문성지에 있는 순교자 현양탑. 한국교회 최대 순교성지인 서소문성지를 품안에 둔 중림동본당은 순교성인에 대한 공경이 남다르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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