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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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성지 : [청년 김대건, 최양업의 북방행로를 따라서] <상>
 paxkorea    | 2006·09·04 23:11 | HIT : 3,139 | VOTE : 623
두 사제 숨결 배어있는 조선 복음화의 '산실'

청년 김대건ㆍ최양업의 '북방행로'를 따라간다. 창춘(長春)에서 옌지(延吉)를 지나 조ㆍ중 국경에 이르는 길은 옥수수가 지천이다. 옥수수로 뒤덮인 평원은 '청무우처럼 푸르던' 두 청년의 선교열정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 여정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부의 숨결이 배어드는 듯하다.

순교자 성월(9월)을 앞두고 8월12~18일 두 사제의 호흡이 느껴지는 지린(吉林)교구 사적지로 향했다. 김현욱(요한 보스코, 67) 한국외방선교후원회장을 단장으로 한 총 11명의 순례단과 함께였다. 퇴적한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간 여정은 쓸쓸하고도 행복했다. 두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았던 지린교구 조바자츠(小八家子)성당, 그리고 이들의 치열한 선교 의지가 배어있는 옌벤(延邊)조선족자치주 일원 동행취재기를 세차례에 걸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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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결코 표현을 멈추는 일이 없다. 하느님의 가없는 사랑도 그러했다.

그 사랑에 목이 메도록 충만했던 스물세살 청년 김대건이 교우촌 '조바자츠'에 찾아들었다. 1843년 4월의 일.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1842년 10월 상하이(上海)에 도착, 랴오닝(遼寧) 봉황성 책문(柵門, 조선과 청의 밀무역시장 '柵門後市'의 줄임말)을 거쳐 의주 변문으로 향한 지 8개월만이었다.

얼마간 건량(마른 음식)과 금 10냥, 은 30냥만을 지닌 채 밀사 김프란치스코와 함께한 1차 조선 입국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벙어리 행세를 해가며 걸식하고, 주막집에서 칼잠을 자거나 노숙을 하는 고난의 행로도 조선에서 들려오는 신자들의 순교 소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동료 최양업은 그가 도착하기 6개월 전인 1842년 11월에 이미 조바자츠에 당도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페레올 신부에게 신학을 배우고 있었다.

1843년 12월 랴오닝성 개주 량구안(陽關)에서 주교 성성식을 거행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최양업과 함께 이듬해 12월25일께 부제품을 받기까지 1년9개월에 걸친 조바자츠에서의 삶은 스물여섯 짧은 삶을 산 김대건에게 드물게 행복했던 시기였다. 1840년 만주대목구 관할 본당으로 신설돼 중국 전통주택보다 약간 크게 지어진 신설 성당은 조선 복음화의 또다른 산실이 된 것이다.

소나기가 막 그쳤다. 조바자츠로 들어가는 길은 생동했다. 짙푸른 녹음으로 뒤덮인 가로수를 따라 5분쯤 갔을까, '김대건로'라고 씌어진 빗돌이 나왔다. 1997년 서울대교구 가락동본당(당시 주임 최선웅 신부)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김대건 성인 성역화 추진위원회'가 허룽(合隆)진에서 조바자츠까지 9.7㎞ 구간을 아스팔트로 포장해 1999년 7월 준공한 것을 기려 세워진 빗돌이다.

세번이나 다녀가며 본 빗돌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다. 허룽진 인민정부측에서 성인 이름을 딴 도로이름을 인정할 수 없다며 천으로 가려놓았던 것을 다시 허용해서가 아니라 '진다젠'이라고 불리는 김대건의 선교 영성이 조바자츠에 전해지는 단초가 되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순례단이 접한 성당은 조바자츠에서 다섯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1908년 네번째로 봉헌된 옛 대성당은 문화대혁명(1966~71년) 때 파괴돼 훗날 다시 건립했다. 숱한 박해 속에서 성당이 세워지고 무너졌기에 옛 성당 정취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주민들의 신심만은 변함이 없다. 3000여명이 사는 이 마을 복음화율은 무려 98%. 아이들이 태어나면 곧바로 성당에서 세례를 받는 것은 물론 세대별 단체가 구성돼 있고 빈첸시오회격인 애심연의회(愛心聯宜會), 청년회, 성가대, 악대 등 다양한 신심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또 주민들은 성당 종소리에 맞춰 일상을 살아갈 정도로 신앙생활에 열심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1885년 이후 121년간 38명의 사제를 배출했다. 물론 문화혁명 시기엔 25년간 성소가 끊겼지만 1983년 이후엔 또다시 10명이 사제품을 받았다. 현 지린교구장 장허아민(張翰民, 81) 주교도 조바자츠본당 출신. 조바자츠본당는 이처럼 지린교구 첫 본당으로서 교구 사제성소의 못자리가 돼 오고 있다.

김대건은 이같은 교우촌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133쪽에 이르는 조바자츠본당 사료에 따르면, 김대건 성인은 조바자츠본당 총회장 집에 거처하며 성모성심수녀회 수도자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쳤다. 그 수녀원터는 조바자츠마을 초등학교인 '바자츠소학(八家子小學)'이 있는 성당 뒤편 부지로,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러나 역사의 기억은 퇴적돼 남아있다. 당시 김대건과 함께 신학을 공부했던 중국인 신학생 2명 가운데 1명인 띵밍리(丁明禮, 안드레아) 신부의 증손자 띵위펑(丁玉峰, 안드레아, 69)씨의 증언.

"당시 총회장이었던 고조께서는 아들이 40대에 상처하자 주교님 관면을 받아 신학생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증조께서 김대건 성인과 함께 공부했지요. 성인께서는 최양업 신학생과 함께 우리집에서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익혔다고 합니다. 당시 성인께서 입으신 방한용 두루마기와 모자가 우리집에 남아 있었는데 두루마기와 모자는 잃어버리고 고모인 띵 테클라 수녀님이 보관해온 모자 술만 일부 남아 한국에 전해져 절두산성지에 보관돼 있다고 들었습니다."

증언을 듣다보니 조바자츠성당 너머 옥수수 평원에 붉은 해가 내려앉고 있었다.

지린성 조바자츠(중국)= 오세택 기자sebastiano@pbc.co.kr


▨ 조바자츠성당 성역화 현황

김대건ㆍ최양업 신부가 각각 1년9개월, 4년간 체류한 조바자츠 성당은 한국교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조바자츠는 두 신부가 △신학을 공부했던 배움의 터전이자 △부제품을 받은 성당이고 △조선 입국의 거점이 됐기 때문.

이로 인해 서울대교구 가락동본당을 중심으로 1997년 '김대건 성인 성역화 추진위원회'가 꾸려졌고, 서울 문정2동ㆍ청담동본당 등 신자들이 가세, 10년간 성역화가 추진돼 왔다. 그 씨앗은 이에 앞서 김현욱 한국외방선교회 후원회장이 1993년부터 3년간 옌벤과학기술대 교수로 있을 때 조바자츠성당측 공식 초청을 받아 방문하며 뿌려졌다.

현재 성역화사업은 △'김대건 성인 동상' 제막(1998년 11월) △'김대건로' 준공(1999년 7월) △'김대건 신부 기념관' 준공(2004년 9월) 차례로 추진돼 왔다. 이 중 건축 연면적 2500평에 지상 5층 규모로 세워진 김대건 신부 기념관은 1ㆍ2층에 양로원 이땐위엔(伊甸院, 에덴원)이, 3~5층에 피정센터가, 4층 일부에 대강당이, 5층 일부에 김대건 전시관이 마련돼 지린교구 내에서도 피정공간으로 애용된다.

향후 과제는 두 사제 행적을 보여주는 자료와 사진, 서한 사본 및 유품 사본 확충과 함께 한국교회가 조바자츠 등 중국 내 한국 관련 교회사적지를 북방선교 활성화 계기로 삼을 수 있느냐 하는 데 있다. 또 장기 과제로 현재 이전을 계획 중인 바자츠소학에 있던 성모성심회 수녀원터 부지 매입도 현안이다.

순례에 함께한 여진천(원주교구 성지 배론 순교자들의 집 주임) 신부는 "조바자츠 성당 성역화는 중국 교우들 도움을 받아 천상의 수호자가 된 김대건 성인과 하느님의 종이 된 최양업 신부님이 중국 교우들과 함께하심을 알려주는 징표"라고 말하고 성역화사업에 함께해줄 것을 당부했다. 후원: 농협 170260-56-072781, 예금주 최선웅 신부

평화신문 오세택 기자

886호
발행일 : 200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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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평일 미사에 참례하러 성당으로 몰려드는 조바자츠 성당 신자들. ▲12일 지린교구 조바자츠성당으로 들어서는 길목 김대건로에 자리한 빗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중국 성지순례단. ▲1840년대초 조바자츠 성당에서 김대건 신부와 함께 페레올 주교에게 신학을 공부했던 띵밍리 신부의 후손인 띵위펑(오른쪽)씨와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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