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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103위 성인 | 124위 복자 | 김대건 | 최양업 | 2차 시복대상 133위 | 2차 시복대상 81위 |
김대건 : 김대건 신부의 편지 : 19-21번째 (옥중에서)
 paxkorea    | 2012·12·16 15:47 | HIT : 6,201 | VOTE : 1,108
● 김대건 신부의 열아홉 번째 편지
발신일 : 1846년 음력 6월 8일 (양력 7 월 30 일)
발신지 : 옥중
수신인 : 베르뇌, 메스트르, 리부아, 르그레주아 신부

예수 마리아 요셉
지극히 공경하올 베르뇌 신부님, 메스트르 신부님, 리부아 신부님, 르그레주아 신부님께,
지극히 공경하올 여러 신부님께 한 장의 편지를 드리게 되니 공경심이 모자라는 듯합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처해 있는 곳과 환경뿐 아니라 공경하을 신부님들께 대한 저의 정성과 애정이 이렇게라도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음력 3월경에 지극히 고귀하시고 공경하을 고 페레올 주교님이 분부하신 대로 저는 배를 타고 백령도에 갔습니다. 거기에 와 있는 중국 어선들을 통하여 여러 신부님께 보내는 라틴어 편지와 한문 편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후 그 편지는 모두 조선 포졸들에게 발각되어 압수되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4명의 신자와 함께 체포되어 다 같이 결박당하여 수도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서울로 오는 도중에 여러 읍내에서 밤을 지낼 때마다 우리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마치 외국인처럼 체포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보니 신자들이 잡혀왔습니다. 머지않아 현 가롤로도 교회를 위하여 활동하던 5명의 여교우와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저의 집에 있던 돈과 제의 등의 물건도 압수되었습니다. 지금은 포졸들이 신자들을 잡으려고 사방에 파견되어 있다는데 누구보다도 공경하올 주교님의 복사인 이 토마스를 체포하려 한답니다. 주교님과 신부님도 체포될까 염려됩니다.
저는 편지 때문에 무수히 많은 심문을 당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보아이번에도 큰 박해가 일어날 듯합니다.
저는 함께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로 용기를 북돋아 주고 예비신자 두 사람에게는 세례성사를 주었습니다. 제가 있는 감옥에는 10명이 함께 갇혀 있고 다른 감옥에 갇혀 있는 신자는 7,8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재판관에게 프랑스의 강대함과 관대한 관습에 대하며 여러 번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제 말을 믿는 것처럼 보였으나 프랑스 신부님들을 죽인 후에도 프랑스로부터 아무런 보복을 받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프랑스인 때문에 저를 죽이기를 두려워하기도 하지만 위에 언급한 이유로 더 이상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안배가 없는 한 조선 신자들이 선교사 신부님들을 영입하거나 보호할 대책과 방법이 없습니다.
프랑스 영사가 중국 황제에게 신부님들을 죽인 것은 잘못한 것임을 설득시키고 또 중국 황제가 조선 왕에게 프랑스인들을 그렇게 함부로 죽이지 말도록 그리고 신자들에게 자유를 주도록 명령하게끔 편지를 보낸다면 대단히 좋을 것입니다. 만일 중국 황제가 조선 왕에게 그렇게 명령한다면 조선 왕은 이에 순종할 것입니다.
비록 후에 조선 신자들이 선교사들을 영입하러 가지 못하게 될지라도 신부님들이 영국 함선을 타고 조선에 오시도록 주선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붓을 놓으며 공경하올 여러 신부님께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립니다.
지극히 고귀하신 베르뇌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지극히 공경하올 메스트르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지극히 공경하올 리부아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지극히 공경하올 르그레주아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머지않아 천당에서 영원하신 성부 대전에서 서로 만나 뵙기를 바랍니다. 저를 대신하여 모든 공경하올 신부님들께도 인사드려 주시기를 청합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형제 토마스여, 잘 있게. 이후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그리고 내 어머니 우르술라를 특별히 돌보아 주기를 그대에게 부탁하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한 저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로 하여금 모든 혹독한 형벌을 끝까지 용감하게 이겨내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환난을 굽어보소서.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여, 누가 감당할 수 있으리이까.
지극히 공경하올 신부님들, 안녕히 계십시오.
무익하고 부당한 종, 그리스도를 위하여 감옥에 갇힌 조선 선교지의 교황 파견 선교사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산동 어선들은 음력 3월에 백령도로 왔다가 음력 5월에 돌아갑니다.


● 김대건 신부의 스무 번째 편지
발신일 : 1846년 8월 26일
발신지 : 옥중
수신인 : 페레올 주교

(이 편지는 아주 얇은 한지에 붓으로 양면에 빈자리 없이 빽빽하게 라틴어로 쓴 것이다. 그 라틴어 원본은 유실되고, 페레올 주교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만 보존되어 있다. 달레 신부는 자신이 저술한 한국천주교회사에 이 편지를 수록하였다.)

공경하올 주교님께 ,
우리가 주교님을 떠나온 다음에 서울에서 일어난 일은 주교님께서 이미 자세히 아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여행 준비를 마친 후 닻을 올리고 순풍을 만나 무사히 연평 앞바다에 도착하여 보니 바다는 어선들로 덮여 있었습니다.
저의 일행은 생선을 사가지고 순위도 항구로 가서 되팔려고 하였으나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선을 육지에 풀어놓고 사공 한사람을 시켜 소금으로 절이게 하였습니다.
거기서부터 우리는 항해를 계속하여 소강, 마합, 터진목, 소청, 대청 등 여러 섬을 지나 백령도 근처에 와서 맞을 내렸습니다. 거기에는 백 척 가량의 중국 산동 어선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배들은 해안 가까이까지 와 있었습니다마는 그 배에 탄 어부들은 아무도 조선 땅에 내릴 수는 없었습니다. 조선 해안의 높은 곳과 산꼭대기에서 포졸들이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근처 섬에 사는 조선 사람들이 호기심에 끌려 중국 배를 구경하려고 모여들었습니다. 저도 밤중에 중국 배를 찾아가서 그 배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교님의 편지와 또한 제가 베르뇌, 메스트르, 리부아 신부님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중국 신자두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이들 편지에 황해도 해안의 섬과 바위와 그 밖에 주의해야 할 것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조선 지도 두 장을 동봉하였습니다.
이곳은 중국인들의 중개를 조심스럽게 잘 이용하기만 하면 선교사신부님들을 영접하고 서로 편지를 전달하기에 매우 유리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 어선들은 고기를 잡으러 해마다 음력 3월 초순에 이곳으로 모이고 5월 하순에는 돌아간답니다.
우리는 주교님의 지시대로 실행한 후 그곳을 떠나 순위도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우리 여행은 그때까지는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기에 끝까지 성공하리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우리가 해변에 펼쳐놓았던 생선이 아직도 마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곳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저의 복사 베난시오가 박해를 피하여 7년 동안 어떤 사람의 집에 숨어 있었을 때 그 집에 맡겨두었던 돈을 찾으러 가겠다며 뭍에 내리게 해 달라고 하기에 허락하였습니다.
그가 떠난 다음에 관장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우리 배에 와서 중국 배를 쫓으려 하니 우리 배를 빌려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조선 법에 따르면 양반의 배는 공공부역에 동원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백성들은 저를 지체 높은 가문의 양반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베난시오가 이런 경우 취할 태도를 일러준 바가 있어 저는 관장에게 우리 배를 빌려주게 되면 제 체면이 깎일 것이고 따라서 이 지역에서 일을 보는 데 지장이 있기 때문에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자 포졸들은 제게 욕을 퍼붓고는 키를 맡은 으뜸 사공을 잡아가더니 저녁때 다시 와서 두 번째 사공을 관가로 끌고 갔습니다. 관장은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퍼부은 결과 저의 신분에 대하여 중대한 의혹을 일으키는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관장은 사공 한 사람이 신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포졸들은 "우리는 30명이다. 만일 저 사람이 참으로 양반이고 그자가 우리에게 폭력을 쓴다고 해도 30명이 다 죽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한두 명만 죽을 테니 함께 그자를 잡으러 가자."고 의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밤중에 여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와서 미친 듯이 저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들은 제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뽑고 포승으로 결박하여 발길질과 주먹질과 몽둥이질을 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남아 있던 사공들은 어두운 밤을 타서 종선으로 빠져나가 힘첫 노를 저어 달아났습니다. 해변에 이르자 포졸들이 제 옷을 벗기고 마구 때리며 온갖 능욕을 퍼부으면서 관가로 끌고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관장이 저에게 "당신이 천주교인이오?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가 "어찌하여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천주교를 믿는 거요? 그 교를 버리시오."라고심문하기에 "나는 천주교가 참된 종교이므로 믿는 거요. 우리 종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고 가르치고 또 나를 영원한 행복으로 인도해 주오. 나는 배교하기를 거부하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관장은 저를 고문하게 하면서 "배교하지 않으면 곤장으로 때려죽이겠소."라고 말하였습니다.
"좋을 대로 하시오. 그러나 나는 결코 우리 하느님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우리 종교의 진리를 듣고 싶으면 들어보시오. 내가 공경하는 하느님은 하늘과 땅과 사람과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고, 선인들은 상 주시고 악인들은 별하시는 분이오. 그러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하느님을 공경하여야 마땅하오. 관장 나으리,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이런 형벌을 당하게 해주니 감사하오. 그리고 우리 하느님께서 당신을 더 높은 벼슬에 오르게 하여 이 은혜를 갚아주시기를 바라오."라고 말했습니다.
관장과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껄껄 웃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길이가 여덟 자나 되는 긴 칼을 가져왔습니다. 저는 즉시 제 손으로 그 칼을 목에 쓰니 둘러섰던 사람들이 또 한번 껄껄 웃어댔습니다. 그리고 저를 이미 배교한 두 사공과 함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손·발·목·허리를 꽁꽁 결박당하여 걸을 수도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저는 호기심에 끌린 구경꾼들에게 둘러싸여 매우 괴로웠습니다. 저는 밤이 이슥토록 저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였더니 그들은 관심 있게 듣고 나서 임금님이 금하지만 않으면 자기들도 믿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포졸들이 제 보따리에서 중국 물건이 나오자 저를 중국인인 줄로 믿었습니다. 이튿날 관장은 저를 출두시킨 뒤 중국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아니오. 나는 조선 사람이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의 말을 믿지 않고 "중국 어느 지방 출신이오?“ 라고 묻기에 "나는 중국 광동성의 마카오에서 공부하였소. 나는 천주교 신자요. 구경도 하고 천주교를 전하기도 할 마음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저를 다시 감옥에 가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닷새가 지난 후에 한 포교가 포졸들을 거느리고 저를 황해도의 수부인 해주 감영으로 이송하였습니다. 감사가 저에게 중국인이냐고 묻기에 순위도 관장에게 대답한 것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는 천주교에 대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영혼의 불사불별, 천당과 지옥, 하느님의 존재, 죽은 후의 행복을 위하여 하느님을 공경할 필요성 등을 그에게 설명하였습니다. 감사와 그 부하들은 "당신이 한 말이 다 좋고 이치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마는 임금님께서 천주교인이 되는 것을 금하시지 않소." 하고 대꾸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신자들과 선교지에 해를 끼칠 여러 가지 정보를 묻기에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화가 나서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혹독한 고문을 할 것이오."라고 큰소리로 호령하였습니다. "마음대로 하시오."라고 대답하면서 저는 여러 가지형구가 있는 데로 달려가 그것을 감사의 발치에 던지며 "나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치실 테면 치시오. 나는 당신들의 고문을 두려워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포졸들은 이내 그 형구를 집어치웠습니다. 감사의 부하들이 저에게 다가와서 "감사 앞에서는 누구라도 소인이라고 말하는 것이 관례요."라며 일러주기에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장성한 어른이고 양반이오. 나는 그런 말은 모르오."라고 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난 다음 감사가 다시 저를 출두시킨 뒤 중국의 여러 사정을 진력나도록 캐물었습니다. 때때로 제가 정말 중국인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려고 통역을 통해 묻기도 하였습니다. 마침내 그가 저에게 배교하라고 명하기에 저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소롭다는 표시로 빙긋이 웃었습니다.
저와 함께 잡힌 신자 두 사람이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제가 살고 있는 서울 집 주소와 주교님의 복사 이 토마스와 그 동생 마테오 그리고 그 외 다른 몇몇 신자의 이름을 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제가중국 배와 연락한 것과 배 주인에게 맡긴 편지 등에 대해서도 실토하였습니다. 그 즉시 포졸 한 부대가 중국 배에 파견되어 그 편지들을 빼앗아 감사에게 가져왔습니다.
그 후에는 저와 사공을 각각 다른 감옥에 가두어 놓고 네 명의 포졸들이 밤낮으로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였습니다. 우리의 손과 발에 쇠사슬이 채워지고 목에는 칼이 씌워졌습니다. 우리 세 사람의 허리는 긴 줄로 묶여져 있었기 때문에 생리적 요구를 해결해야 할 때마다 그 줄을 붙잡고 있어야 하였습니다. 우리가 당한 고통이 어떠하였겠는 지는 상상에 맡겨드립니다.
제가 마카오에서 병을 않았을 때 치료하기 위하여 거머리를 가승에 붙여서 생긴 흠집이 일곱 군데나 있는 것을 보고 포졸들은 저를 북두칠성이라는 둥 별별 조롱을 다하며 야유 하였습니다.
임금님은 우리가 체포된 사실과 또 제가 중국인이라는 말을 듣고 포졸을 보내어 서울로 압송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길을 가는 동안에도 감옥 안에 갇혔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대로 결박되어 있었습니다. 도둑이나 큰 죄인처럼 붉은 포승으로 팔을 묶고 머리엔 검은 자루를 씌웠습니다.
구경꾼들이 우리를 귀찮게 괴롭혀서 길을 걷기가 몹시 피곤하였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라고 알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구경하려고 나무 위나 지붕 위로 올라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서울에 도착하여 포도청에 수감되었습니다. 포도청 사람들은 저의 말투를 들어보고는 "분명히 조선 사람이다."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이튿날 재판관들이 저를 출두시켜 놓고는 "당신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오? 라고 묻기에 "나는 조선 사람으로서 중국에 가서 공부하였소이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중국어 통역을 불러다가 저와 이야기를 시켜보았습니다.
1839년 박해 때 배반자(김여상)가 조선 소년 3명이 서양말을 배우러 마카오로 떠났음을 일러바쳤습니다. 또 저와 함께 잡힌 신자 한 사람이 제가 이 나라 사람임을 실토하였으므로, 저의 신분이 오랫동안 감춰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판관들에게 "나는 그 세 소년중의 하나인 김대건 안드레아요."라고 자백하는 동시에 조국에 돌아오기 위해 겪어야 했던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재판관들과 구경꾼들이 "가엾은 젊은이로다. 어려서부터 엄청난 고생을 많이도 하였구나." 하며 혀를 찼습니다. 그런 다음 임금님의 명령에 따라 배교하기를 명령하였습니다. 저는 "임금님위에 하느님이 계시는데 그분이 우리에게 당신을 공경하라고 명하시오. 그러니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은 임금님의 명령이라도 정당화시킬 수 없는 큰 죄악이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신자들을 대라고 독촉하였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애덕의 의무와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계명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들이 다시 천주교에 대하여 묻기에 저는 하느님의 존재와 단일성, 우주만물의 창조, 영혼의 블사 불멸, 천당과 지옥, 창조주를 경배할 필요성, 이교의 허위성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말을 끝내자 재판관들은 "당신의 종교도 좋소. 우리도 우리 종교가 좋기 때문에 믿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즉시 '당신들의 의견이 그러하다면 우리를 편히 지내도록 조용히 내버려 두어야 하지 않소? 그런데 그러기는커녕 당신들은 우리를 박해하고 우리를 극악한 범죄인보다 더 가혹하게 다루고 있소. 당신들은 우리 종교를
옮고 좋은 종교라고 인정하면서도 마치 극악한 종교처럼 박해하고 있소. 이것은 자가당착이고 모순이오."라고 반박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대답 대신 그저 바보스럽게 웃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압수된 여러 통의 편지와 지도를 저에게 가져왔습니다. 한문으로 씌어 진 편지 두 통은 관장이 직접 읽었으나 거기에는 안부의 말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서양 글씨로 쓴 편지를 저에게 내밀며 번역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천주교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게 번역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베르뇌, 메스트르, 리부아 신부님에 관해 질문하였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중국에 사는 큰 학자들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주교님의 편지와 저의 편지 글씨가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하고 누가 썼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통틀어 제가 썼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주교님의 편지를 내보이면서 써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이 꾀를 쓰는 모양이기에 저도 꾀를 내어 그들을 이겼습니다. "그 글씨는 철필로 쓴 것이니 내게 철필을 갖다 주시오. 그러면 분부대로 하겠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우리는 철필이 없소."라고 하길래 저는 "철필이 없으면 그와 같은 글씨를 쓸 수 없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새것을 가져왔습니다. 재판관은 그것을 제게 주며 "이것을 가지고 쓸 수는 없겠소?"라고 말했습니다. "철필과 같지는 않지만 서양 글씨는 한사람이 여러 모양으로 다르게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는 있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고 저 새깃을 뾰족하게 깎아 아주 가는 글씨 몇 줄을 써놓고 그 다음에는 새것의 끝을 잘라버리고서 굵은 글씨를 써놓은 뒤에 "자, 보시오. 이 두 글씨가 다르지 않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만족하게 여겼던지 편지에 관해서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습니다. 주교님이 보시다시피 우리 조선의학자는 서양의 학자와 같은 수준이 아님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저와 함께 잡힌 신자들은 서울에서 아직 고문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가롤로(현석문)는 자기와 함께 잡힌 신자들과 다른 감옥에 갇혀있어서 우리와는 연락할 수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감옥에 함께 갇혀 있는 10명의 신자 중에 4명이 배교하였는데 그들 중 3명은 자신의 나약함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1839년에 나약하였던 이(신규) 마태오가 지금은 넘치는 용맹으로 순교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배의 키를 맡았던 으뜸 사공 선실의 부친과 그리고 전에 신자들에게 좋지 못한 표양을 주었던 남(경문) 베드로도 이 마테오를 본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형장에 끌려갈 날짜는 알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자비에 온전히 의탁하고 주님께서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증거 할 용맹을 주시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주교님의 복사 이 토마스와 그 밖의 주요한 신자들을 기어이 체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포졸들도 지쳤는지 신자들을 수색하는 데 열성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들은 이천, 양지, 은이, 그리고 충청도와 전라도까지 각처로 갔다고 합니다.
주교님과 안 다블뤼 신부님은 제가 죽은 후에도 깊숙이 숨어 계시기를 바랍니다. 재판관의 말을 듣자니 외연도 근처에 정박한 세 척의 군함이 프랑스 군함으로 믿어진다고 합니다. 프랑스 황제의 명령을 받고 파견되어 온 그 군함은 조선에 큰 환난을 내릴 듯이 위협하고 나서 두척은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고 떠나갔고 한 척은 조선 근해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조선 조정은 1839년에 순교한 3명의 프랑스인을 죽인 사건을 기억하고 두려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무슨 목적으로 군함이 왔는지 아느냐고 묻기에 저는 그들이 왜 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프랑스인들은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으니까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는 강력한 나라지만 그 정부는 관대한 도량을 가졌다고 하였더니 제 말을 믿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인을 3명이나 죽였는데도 아직 아무런 보복을 당하지 않았다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만일 프랑스 함선이 실제로 조선에 왔다면 주교님께서는 그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저에게 영국에서 만든 세계지도 한 장을 주면서 번역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화려한 여러 가지 색깔로 두 장을 그렸는데 이것이 그들의 눈에 들었습니다.
한 장은 임금님께 바칠 것이랍니다. 지금 저는 대신들의 지시로 간단한 지리 개설서를 편찬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저를 큰 학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참으로 딱한 사람들입니다.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떨어져 있던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만 만나보았을 뿐인데 또다시 갑작스럽게 잃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시기를 주교님께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저는 진정으로 주교님의 발아래 엎드려 지극히 사랑하올 아버지이시고 지극히 공경하올 주교님께 마지막 하직 인사를 드립니다. 또 베지 주교님께도 같은 인사를 드립니다. 다블뤼 신부님께 지극히 공손한 하직 인사를 드립니다. 이 다음에 천당에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며 감옥에 갇힌 탁덕 김 안드레아가 올립니다.

주교님께 올리는 편지의 추신 : 감옥 안에서, 1846년 8월 29일 프랑스 군함이 조선에 왔다는 확실한 소식을 오늘 들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위협만 하고 돌아간다면 도리어 우리 교회에 크나큰 재앙만 남게 하고 저도 그로 인하여 죽기 전에 가혹한 형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주 하느님 , 모든 일을 잘 보살피시어 좋은 결과가 있게 하소서 .


● 김대건 신부의 스물한 번째 편지 (마지막 회유문)
발신일 : 1846년 8월 말
발신지 : 옥중
수신인 : 조선 신자들

교우들 보아라.
우리 벗아, 생각하고 생각할지어다.
천주 무시지시(無始之時)로부터 천지 만물을 배설(配設)하시고, 그중에 우리 사람을 당신 모상과 같이 내어 세상에 두신 위자(慰藉)와 그 뜻을 생각할지어다.
온갖 세상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가련하고 슬픈 일이 많다. 이 같은 험하고 가련한 세상에 한번 나서 우리를 내신 임자를 알지 못하면 난 보람이 없고, 있어 쓸데없고, 비록 주은(主恩)으로 세상에 나고 주은으로 영세 입교하여 주의 제자 되니 이름이 또한 귀하거니와 실이 없으면 이름을 무엇에 쓰며, 세상에 나 입교한 효험(效驗)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배주배은(背主背思)하니 주의 은혜만 입고 주께 득죄(得罪)하면 아니 남만 못 하리.
밭을 심는 농부를 보건대 때를 맞추어 밭을 갈고 거름을 넣고 더위에 신고(辛苦)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씨를 가꾸어 밭 거둘 때 이르러 곡식이 잘 되고 염글면, 마음의 땀낸 수고를 잊고 오히려 즐기며 춤추며 흠복할 것이요, 곡식이 염글지 아니하고 밭 거둘 때 빈 대와 껍질만 있으면 주인이 땀낸 수고를 생각하고 오히려 그 밭에 거름내고 들인 공부로써 그 밭을 박대하나니, 이같이 주 땅을 밭을 삼으시고 우리 사람으로 벼를 삼아 은총으로 거름을 삼으시고 강생 구속하여 피로 우리를 물 주사 자라고 염글도록 하여 계시니, 심판날 거두기에 이르러 은혜를 받아 염근 자 되었으면 주의 의자로 천국을 누릴 것이요, 만일 염글지 못하였으면 주의 의자로 원수가 되어 영원히 마땅한 벌을 받으리라.
우리 사랑하온 제형들아, 알지어다. 우리 주 예수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로조차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나게 하신지라.
그러나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예수승천 후 종도(宗徒) 때부터 지금까지 이르러 성교 두루 무수 간난(艱難) 중에 자라니, 이제 우리 조선이 성교 들어온 지 5,60년에 여러 번 군난(窘難)으로 교우들이 이제까지 이르고 또 오늘날 군난이 치성(熾盛)하여 여러 교우와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너희들까지 환난(患難)을 당하니, 우리 한 몸이 되어 애통지심(哀痛之心)이 없으며 육정(肉情)에 차마 이별하기 어려움이 없으랴.
그러나 성경에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 돌아보신다 하고 모르심이 없어 돌보신다 하셨으니, 어찌 이렇다 할 군난이 주명(主命) 아니면 주상주벌 (主賞主罰) 아니랴.
주의 성의(聖意)를 따라오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예수의 대장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 마귀를 칠지어다.
이런 황황(遑遑)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부디 서로 우애(友愛)를 잊지 말고 돕고 아울러 주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환난을 걷기까지 기다리라.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광영(爲主光榮)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여기 있는 20인은 아직 주은으로 잘 지내니 설혹 죽은 후라도 너희가 그들의 가족을 부디 잊지 말라.
할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紙筆)로 다하리. 그친다.
우리는 미구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만나자.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의 이런 난시(難時)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를 빌어 삼구(三仇)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광영하고 여등(汝等)의 영원 대사를 경영하라.
이런 군난 때는 주의 시험을 받아 세속과 마귀를 쳐 덕공(德功)을 크게 세울 때니 부디 환난에 눌려 항복하는 마음으로 사주구령사(事主救靈事)에 물러나지 말고 오히려 지나간 성인성녀의 자취를 만만 수치(修治)하여 성교회 영광을 더으고 천주의 착실한 군사와 의자 됨을 증거하고 비록 너희 몸은 여럿이나 마음으로는 한 사람이 되어 사랑을 잊지 말고 서로 참아 돌보고 불쌍히 여기며 주의 긍련(矜憐)하실 때를 기다리라.
할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입으로 너희 입에 대어 사랑을 친구(親口) 하노라.
부감목 김 안드레아.
세상은 온갖 일이 막비주명(莫非主命)이요 막비주상주별(莫非主賞主罰)이라. 고로 이런 군난도 역시 천주의 허락하신 바니 너희 감수 인내하여 위주(爲主)하고 오직 주께 슬피 빌어 빨리 평안함을 주시기를 기다리라.
내 죽는 것이 너희 육정과 영혼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으랴. 그러나 천주 오래지 아니하여 너희에게, 내게 비겨 더 착실한 목자를 상 주실 것이니 부디 설워 말고 큰 사람을 이뤄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김 신부 사정 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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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124위 복자   124위 한국 순교 복자 호칭 기도 15·05·10 2887
29 124위 복자   124위 복자 124위 초상 14·12·15 3315
28 2차 시복대상 81위   2차 시복대상자 : 근ㆍ현대 신앙의 증인 81위 13·07·04 3849
27 2차 시복대상 133위   2차 시복대상자 :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13·07·04 4130
26 103위 성인   한국 103위 성인 명단 13·01·12 6596
25 103위 성인   한국 103위 성인 약전 : [가] 13·01·12 4202
24 103위 성인   한국 103위 성인 약전 : [나∼사] 13·01·12 4545
23 103위 성인   한국 103위 성인 약전 : [아] 13·01·12 4301
22 103위 성인   한국 103위 성인 약전 : [자∼하] 13·01·12 4108
21 103위 성인   한국 103위 성인 기도문 13·01·12 4426
20 124위 복자   하느님의 종 125위 명단 13·01·12 5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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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24위 복자   한국 124위 복자 약전 : [아] 13·01·12 9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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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김대건   김대건 신부의 편지 : 4-7번째 (요동 백가점에서) 12·12·16 5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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