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Home >> 교구별 성지 >> 인천교구

TOTAL ARTICLE : 12, TOTAL PAGE : 1 / 1 회원가입 로그인
구분 서울대교구 | 춘천교구 | 대전교구 | 인천교구 | 수원교구 | 원주교구 | 의정부교구 | 대구대교구 | 부산교구 | 청주교구 | 마산교구 | 안동교구 | 광주대교구 | 전주교구 | 제주교구 |
인천교구 : 강화 박순집 베드로 증언자의 묘
테마 분류 :: 성지 지역 분류 :: 인천교구 > 인천, 강화
16명의 순교 가족을 낸 믿음의 증언자이며 유해 발굴의 공로자 박순집의 묘

강화도 갑곶 돈대 성지에는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자 박순집(1830~1911, 베드로)의 묘가 모셔져 있다. 비록 참수 치명자는 아니나 그의 전 생애는 어느 순교자 못지않은 거룩한 삶을 살았다. 목숨을 걸고 행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시신 안장, 그리고 성직자들의 영입과 보호,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 인천 교회의 창립에 초석 역할을 하였다.  

박순집 베드로는 1830년 10월 9일 서울 남문 밖 전생서(典牲署. 현 용산구 후암동)에서 순교자 박 바오로와 김 아가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모의 도움으로 제2대 교구장 앵베르(Imbert, 范世亨, 1796~1839, 라우렌시오) 주교의 심부름꾼이 되기도 하며 주교님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박순집 베드로의 아버지 박 바오로는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치명한 앵베르 주교, 샤스탕, 모방 신부의 시신을 목숨을 걸고 노고산에 매장하였다가 4년 후에 시흥(현 서울 관악구) 삼성산에 안전하게 이장하기도 하였다. 박순집의 부친 박 바오로는 1868년 3월 23일 자기 아들(박순집의 큰형) 집에서 잡혔고, 아들 내외와 동생과 함께 포청옥에서 치명하였다. 잡혀 간지 6일 만에 비신자 일가들이 시신을 찾아 매장했다고 한다.

박순집은 25세에 그의 부친과 같이 훈련도감의 군인이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張敬一, 1814~1866, 시몬) 주교, 브르트니에르(Bretnie‵res, 白, 1838~1866, 유스토) 신부, 볼리외(Beaulieu, 徐沒禮, 1840~1866, 루도비코) 신부, 도리(Dorie, 金,
1839~1866, 헨리코) 신부, 프티니콜라(Petitnicolas, 朴德老, 1828~1866, 미카엘) 신부, 푸르티에(Pourthi´e, 申妖案, 1830~1866, 가롤로) 신부와 우세영(禹世英, 1845~1866, 알렉시오) 등이 3월 7일과 3월 11일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 박순집은 군인으로 참여하게 되어 이를 직접 목격하였다.
그래서 박순집은 아버지 박 바오로의 뜻을 이어 가기로 결심하고, 박순지 요한 등 몇몇 신자들과 함께 3월 28(음) 시신을 찾아내어 새남터 부근에 임시 매장한 후 4월 14일(음)에 다시 와서로 이장하였다. 그리고 3월 7일과 9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 요한과 최형 베드로 시신도 신자들과 함께 찾아내어 왜고개에 안장하였다.
병인박해로 박순집의 가족도 결국 체포되어 1866년 10월 17일 형 요한의 아들 박 바오로(20세), 고모 박 막달레나, 1868년 3월 29일 부친 박 바오로(63세)가 잡혀 순교한 것을 비롯하여, 그 일가 16위의 순교자가 탄생하였으나 박순집은 여러 박해의 검거망을 기적적으로 피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래서 박 베드로는 가족 시체들을 찾아내어 안장하였다.
이후 1979년 9월 26일 박순집의 공적을 기리고 그의 부친 순교자 박 바오로를 비롯한 “일가족 16위 순교자 현양비”를 제막하였다. 박순집에 의해 성인들과 순교자들이 묻혔던 왜고개에는 현재 군종교구 국군 중앙 성당이 세워져 있다.

■  박순집 부자의 순교자들을 위한 헌신적 활동

◆  부친 박 바오로의 순교자 안장

기해박해 때 그의 부친 박 바오로는 훈련도감 포수(訓練都監 砲手)로 봉직하고 있었기에 새남터에서 순교한 주교, 신부들의 순교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에 박 바오로는 몇몇 교우들의 도움으로 새남터에서 주교와 신부들의 시신을 지키던 군사들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모래로 대강 덮은 무덤 가까이 가서 손으로 모래를 파헤치고, 잘라진 목과 시체를 전부 찾아내어 머리 셋은 다 수염이 길어 입에 물고, 시체 삼구는 등에 업고 양팔에 끼고 나와 기다리고 있던 교우들이 준비한 관에 대강 수습하여 그 밤으로 노고산(老古山. 현 마포구 노고산동)에 안장하였는데 이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적 고귀한 희생이었다.
그 후 박 바오로는 복잡한 서울 근교에 안장한 성직자의 묘가 안심이 안되어 1843년, 박씨 집안의 선산인 삼성산(三聖山. 현 관악구 신림동)으로 이장하며 사기 그릇에 순교 연월일과 이름을 먹으로 써서 묘에 함께 묻고, 후일 찾기 쉽게 표적을 해 놓기도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삼성산에 모셔진 묘로 그의 아들 베드로를 데리고 가서 “후일 성교회에서 성직자 무덤을 찾을 터이니 네가 잘 보아 두었다가 가르쳐 드려야 한다.”고 전하였다.
그리고 박 바오로는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순교하자 안성(安城) 미리내로 이장되기 전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새남터에서 김신부의 시신을 찾아내서 와서(瓦署. 현 용산구 한강로3가 왜고개)에 안장하였다. 당시 17세였던 박순집도 서소문과 당고개를 거쳐 새남터 형장으로 가는 김대건 신부를 목격하였다.

◆  박순집의 순교자 시신 안장

박순집은 25세에 그의 부친과 같이 훈련도감의 군인이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Berneux 張) 주교, 브르뜨니에르(白) 신부, 보리외(徐) 신부, 도리(金) 신부, 프티니콜라(朴) 신부, 푸르티에(申) 신부와 우세영(禹世英, 알렉시오) 등이 3월 7일과 3월 11일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 박순집은 군인으로 참여되어 이를 직접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박순집은 아버지 박 바오로의 뜻을 이어 가기로 결심하고, 박순지(요한) 등 몇몇 신자들과 함께 3월 28(음) 시신을 찾아 내어 새남터 부근에 임시 매장한 후 4월 14일(음)에 다시 와서로 이장하였다. 그리고 3월 7일과 9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요한)과 최형(베드로) 시신도 신자들과 함께 찾아내어 와서에 안장하였으며, 3월 9일에 순교한 전장운(全長雲, 요한), 3월 11일에 순교한 뒤 가족들에 의해 거두어진 정의배(마르코) 회장의 시신은 훗날 노고산에 안장하였다.

◆  박순집 일가 16명의 순교

병인박해로 박순집의 가족도 결국 검거망에 걸리게 되어 양화진(현 절두산)에서 1866년 10월 17일 형 요한의 아들 박 바오로(20세), 고모 박 막달레나, 1868년 3월 29일 부친 박 바오로(63세)가 잡혀 순교한 것을 비롯하여 그 일가 16위의 순교자가 탄생하였으나 박순집은 여러 박해의 검거망을 기적적으로 피하여 위기를 모면하였다. 그래서 박 베드로는 가족 시체들을 찾아내어 아버지와 형님 내외분, 백부의 시체를 「둔짐」이란 곳에 안장하였다.  

◆  선교사들의 입국 협조와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

공식적인 박해가 철회된 1876년, 박순집은 교회의 밀사 최지혁(요한)과 고종의 유모 박 마르타의 딸 원(元) 수산나 등과 협력하여 드게트(崔) 신부, 블랑(Blanc, 白) 신부 등을, 1877년에는 리델(Ridel, 李, 제6대 교구장) 주교, 두세(丁) 신부, 로베르(金) 신부 등을 입국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후 1888년에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白) 주교가 프오델(朴) 신부에게 조선 순교자들의 행적을 조사하도록 하자 프오넬 신부는 박순집을 불러 자신이 보고 들은 것과 순교자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 자신의 집안과 다른 순교자들의 행적을 교회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기 권 타대오에게는 한마디도 바꾸지 말고 기록하도록 하여 증언록이 작성되었는데 이 증언록이 박순집 증언록(丙寅事蹟 朴順集證言錄)으로 3권에 153명의 순교자 행적이 기록되어 현재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1899년 10월 30일, 박순집의 도움으로 와서에 있던 7명의 유해가 발굴되어 용산 예수성심학교에 안장되었고, 1901년 10월 21일에 삼성산에 묻혀 있던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의 유해도 발굴되어 명동성당에 안치되었으며, 1909년 5월 28일에는 노고산에 묻혀 있던 남종삼과 최형의 시신이 발굴되어 명동 성당에 안치되었다.
이처럼 순교자들의 행적 증언과 유해 발굴에 큰 공을 세운 박순집은 1878년에 홍제원(현 홍제동) 장거리 고개 밑에서 살았는데 교회를 위해 자신의 집을 공소로 내놓았고, 1888년에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하자 셋째 딸 박황월(朴黃月.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을 수녀회에 입회시켰다. 그래서 박 수녀는 조선인 최초 5명의 수녀 중 한 분으로 그가 95세의 일기로 선종하기까지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것을 자세히 기록하여 놓았는데 이 글에는 자신의 가족들의 순교 행적과 신앙생활, 수도회 역사의 내용으로 아버지 박순집 증언록처럼 교회의 산 기록이 되고 있다.  

◆  인천교구에서 전교 활동과 거룩한 선종

1889년에는 인천에 사는 한 교우가 박순집을 찾아와서 인천 제물포(濟物浦)로 내려와 전교해 줄 것을 간곡히 청하자 1890년에 전교의 원대한 포부를 간직하고 아들 식구와 전 가족을 데리고 제물포로 이사했다. 박순집이 제물포에 와서 근교에 교우를 살펴보니 자기를 인천으로 초대한 교우 가정과 또한 가정, 일본인 교우집, 중국인 한 사람이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 베드로는 1889년에 한국인 59명, 일본인 25명으로 설립된 답동본당(초대 주임 빌렘 신부) 사목을 도우며 전력을 다하여 전교에 힘썼다. 그런데 1893년에 박순집의 집터가 경인 철도 부설로 인하여 철도 부지로 편입되어 부득이 외곽지역인 주안 숙골(현 도화동)에 밭을 사서 이주하여 생활을 하다가 1911년 6월 27일 82세의 나이로 "예수 마리아 요셉"을 부르며 선종 하였다.
그런데 방안에는 향기가 풍기어 장손 요셉이 밖으로 나가 지붕을 올려 보자 동쪽으로 뻗친 두 줄기 광채는 마치 쌍무지개 같았고, 이웃 동네 사람들은 온통 불빛에 쌓여 있는 박 베드로의 집을 보고 불이 난줄로 알고 손에 손에 물통을 들고 불을 끄려고 몰려왔다. 그러나 집은 타지 않고 광채의 서기만 있어 모두 놀라 장남 요셉에게 신비스런 현상을 이야기하며 주위를 살피니 박순집 베드로가 선종하면서 나타난 서기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 땅에 무릎을 꿇고 박순집 베드로가 성인이 되었다고 칭송하였다. 그리고 박순집 베드로의 시신은 독쟁이(현 용현동)에 묻었다. 이처럼 박순집 베드로의 일생은 순교자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을 실천한 증언자의 삶이었다. 그리고 인천으로 이주해 와 살은 20여년은 평신도 사도직을 성실히 수행하여 오늘날 인천교구 발전에 초석이 된 삶이었다.  
그래서 인천교구 성지개발위원회에서는 교구 신자들의 순교자 현양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용현동(독생이)에 묻혔다가 1961년 8월 31일 천주교 서울교구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내로 천묘된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를 서울교구의 도움으로 2001년 5월 24일 그가 말년에 살았던 도화동과 인연이 있는 도화동 성당 내에 봉안하여 순교자 현양 기도 모임을 갖고, 9월 순교자 성월에 강화 갑곶 성지 내에 천묘하였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갑곳리 1000)
35, Haeandong-ro 1366beon-gil, Ganghwa-eup, Ganghwa-gun, Incheon 
지리좌표 [묘소 앞] 북위 37°44′03.6″ 동경 126°31′04.5″  
연락처 갑곶돈대 성지 (032) 933-1525 FAX (032) 933-1526  
홈페이지 갑곶돈대 성지 http://gabgot.com  
미사시간 평일 : (월-금) 오전 11:00 (수목금) 오후 3:00
주일 : 오전 11:00 오후 5:00  
교통편 [승용차] 강화대교를 건너자 마자, 또는 300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와 몽정파크, 만수장 앞에 있는 도로 아래 굴을 지나 왼쪽으로 나가면 곧 갑곶돈대가 나온다.
[버스] 서울-강화읍 직행버스/신촌 시외버스터미널(02-324-0611)에서 10분 간격 운행 
인천교구의 성지
 강화 갑곶 순교 성지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교회 창립시기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강화도  인천,강화
 강화 동헌과 관청리 형방  병인박해시 고문을 자행하던 강화 동헌과 관청리 형방  인천,강화
 강화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  한국의 모든 순교자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현양 동산  인천,강화
 강화 진무영 순교 성지  병인양요를 촉발시킨 최인서, 장치선 등의 순교 터  인천,강화
 강화 황사영 알렉시오 생가 터  백서의 주인공 황사영 알렉시오의 탄생지   인천,강화
 김포 성체 성지  김포 옛 성당을 한국교회 최초 성체 성지로 선포  김포
 인천 반주골 이승훈 베드로 묘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묘가 있는 곳  인천
 인천 제물진두 순교 성지  병인박해 때 박순집의 외가 집안과 이승훈의 후손들이 치명한 순교터  인천
인천의 여행지
 인천 소래포구  추억과 낭만이 가득한 소래 포구의 정취  인천
 인천 송도유원지  국내 최초로 인공백사장으로 꾸며진 해수욕장  인천
 인천 지방의 섬 : 강화도 - 강화 팔경  단군왕검의 개국 설화가 있는 마니산이 있는 강화도  인천
 인천 지방의 섬 :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건설로 이름을 잃어버린 섬  인천
 인천 차이나 타운  전찰타고 반나절 중국여행  인천
 인천지역 해수탕  서해바다 일몰의 장관과 가족이 함께 찾는 해수탕  인천
인천의 맛집
 인천 강화군 : 강화도 주변 맛집들  성지 : 갑곶돈대, 강화동헌, 진무영, 일만위 순교자 동산, 박순집묘, 황사영 생가터 주변  인천
 인천 남구 용현동 : 성진물텀벙 <물텀벙>  용현동 물텀벙이 골목의 원조로 아귀요리 전문점  인천
 인천 동구 송림동 : 아리랑회관 <내장탕>  인천의 명물 소 내장탕으로 유명한 한식집  인천
 인천 중구 북성동 : 신승반점 <중식>  자장면 원조격인 공화춘 창업주 외손녀가 운영하는 중식당  인천
 인천 중구 북성동 : 십리향 <옹기병>  화덕만두로 유명한 티베트식 만두 '옹기병(餠)' 전문점  인천
 인천 중구 북성동 : 원보 <만두>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 전통 수제 만두 전문점  인천
 인천 중구 신포동 : 화선횟집 <민어요리>  인천에서 제대로 민어를 맛볼 수 있는 곳  인천
 인천 중구 신흥동 : 성원식당 <게장백반>  인천에서 게장백반으로 유명한 집  인천
 인천 중구 신흥동 : 신성복집 <복집>  인천에서 저렴하게 졸복을 즐길 수 있는 곳  인천
 인천 중구 중앙동 : 중앙옥 <설렁탕>  인천에서 설렁탕과 도가니, 우족 등으로 유명한 집  인천
목록
12   인천교구 : 김포 성체 성지
김포 옛 성당을 한국교회 최초 성체 성지로 선포
김포 옛 성당이 한국교회 최초 성체 성지로 선포됐다. 인천교구는 2015년 10월 16일 '성체 성지 선포에 즈...
11   인천교구 : 인천 답동 주교좌 성당
1889년 설립된 인천교구 최초의 성당이자 주교좌 본당
인천교구 최초의 본당이자 주교좌 본당인 답동 성당은 1889년 7월 1일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 제물포 본...
10   인천교구 : 부천 함박이와 싯골
순교자들의 출생지이며 은거처
천주교회사 사료인《치명일기>에 보면 인천현(仁川縣)내의 함박리(咸朴里)는 순교자 심원경(스테파노) • ...
9   인천교구 : 옹진 백령 성당
박해시 선교사 입국에 ‘약속 장소’로 큰 몫을 한 백령도
백령도는 이제까지 1846년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중국에 와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8   인천교구 : 인천 제물진두 순교 성지
병인박해 때 박순집의 외가 집안과 이승훈의 후손들이 치명한 순교터
문서상으로도 병인박해 때 제물진두에서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다고 쓰여 있으나 정확한 위치가 고증되지 않았다...
7   인천교구 : 강화 갑곶 순교 성지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교회 창립시기부터 인연을 맺고 있는 강화도
경기도 서해안의 강화도는 수도 방어의 요충지로서 교회 창립 시기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강화도는 19세기 후...
6   인천교구 : 강화 동헌과 관청리 형방
병인박해시 고문을 자행하던 강화 동헌과 관청리 형방
강화는 굽히지 않는 신앙의 현장이자 외세와의 갈등을 빚어낸 역사의 교육장이기도 하다. 고려 궁지에 있는 동...
5   인천교구 : 강화 일만위 순교자 현양 동산
한국의 모든 순교자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현양 동산
한국의 일만위 순교자 넋을 기리고 현양하기 위하여 마련된 곳이다. 현양 동산에는 성모당과 십자가의 길, 고...
  인천교구 : 강화 박순집 베드로 증언자의 묘
16명의 순교 가족을 낸 믿음의 증언자이며 유해 발굴의 공로자 박순집의 묘
강화도 갑곶 돈대 성지에는 순교자들에 대한 증언자 박순집(1830~1911, 베드로)의 묘가 모셔져 있다. 비...
3   인천교구 : 강화 진무영 순교 성지
병인양요를 촉발시킨 최인서, 장치선 등의 순교 터
진무영(鎭武營)은 조선 시대에 해상 경비의 임무를 맡았던 군영(軍營)이며,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
2   인천교구 : 인천 반주골 이승훈 베드로 묘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묘가 있는 곳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반주골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李承薰, 1756~1801, 베드로)...
1   인천교구 : 강화 황사영 알렉시오 생가 터
백서의 주인공 황사영 알렉시오의 탄생지
강화 월곶리 마을은 교회사학계 일각에서, 1801년 신유박해의 상황을 적은 《백서(帛書)》의 주인공 황사영(...
1
 공지사항 | 자주묻는 질문 | 사이트맵 | 건의 및 불편사항 | 사이트 소개
COPYRIGHT  2004 - 2020  PAX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