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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 인천 반주골 이승훈 베드로 묘
테마 분류 :: 성지 지역 분류 :: 인천교구 > 인천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 묘가 있는 곳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반주골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선각자,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李承薰, 1756~1801, 베드로)과 그의 아들 신규(李身逵, 1794~1866, 마티아), 택규(李宅逵, 비신자)의 묘가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교회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반대파들로부터는 천주교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그 원흉으로 지목되어 어려움을 겪다가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참수되었다.
일찍부터 이승훈은 외숙 이가환(李家煥, 1742~1801, 호 錦帶)의 영향을 받아 서학서들을 접하였으며, 그중에도 서양의 천문, 사상, 특히 수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1783년 말에는 동지사의 서장관(書狀官)으로 가는 부친 이동욱(李東郁)을 따라 북경에 갈 기회를 얻게 되었다.
이 무렵 천주교 교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이벽(李檗, 1754~1785, 세자 요한)이 이승훈을 찾아왔고, 북경에 가게 되면 선교사들로부터 영세를 받고 서양 서적을 얻어오도록 부탁하였다. 12월 21일 북경에 도착한 이승훈은 즉시 북당(北堂)을 방문하여 선교사들을 만났으며, 특히 궁정의 수학자로 활동하였던 예수회 선교사 그라몽(Grammont, 梁棟材, 1736~1812, 요셉) 신부와 가까워지게 되었다.
1784년 2월경 그는 세례명을 베드로로 정하고 세례를 받았다. 이로써 그는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가 되었다. 1874년 초 교리서적, 십자고상, 상본을 갖고 귀국, 이벽, 정약전(丁若銓, 1758~1816, 호 巽庵)·정약용(丁若鏞, 1762~1836, 요한) 형제, 권일신(權日身, 1753~1792,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다시 이벽으로 하여금 최창현(崔昌顯, 1759~1801, 요한), 최인길(崔仁吉, 1765~1795, 마티아), 김종교(金宗敎, 1754~1801, 프란치스코) 등에게 세례를 베풀게 하여 신자 공동체를 형성시켜 이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였다.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이 발생하자 친척과 집안 식구들의 탄압으로 배교, 천주교 서적을 불태우고 벽이문(闢異文)을 지어 자신의 배교를 공언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다시 교회로 돌아와 가성직 제도를 주도, 신자들에게 세례와 견진 등 성사를 집전했고, 1787년 겨울에는 정약용, 강이원(姜履元) 등과 함께 반촌(泮村, 현재의 혜화동)에서 교리를 연구하였다.

1791년 진산 사건으로 권일신과 함께 체포되어 평택 현감 재직시 향교에 배례하지 않았던 사실과 1787년 반촌에서 서학서를 공부했던 사건[丁未泮會事件]이 문제되자 다시 배교, 관직을 삭탈당하고 석방되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 이듬해 3월 22일 이가환, 정약용, 홍낙민(洪樂敏, 1751~1801, 루카) 등과 함께 체포되어 의금부의 국청에서 배교했으나 4월 8일(음 2월 26일) 정약종(丁若鍾, 1760~1801, 아우구스티노), 홍낙민, 홍교만(洪敎萬, 1738~1801,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 6명과 함께 참수되었다. 이승훈은 비록 여러 번 배교하고 교회를 떠났던 인물이지만 초기 한국 천주교회를 주도했고 가성직 제도를 주도했던 인물로서 한국 천주교회의 첫 장을 연 인물로 평가된다.

▒ 정미반회 사건(丁未泮會事件)
정미년(丁未年) 즉 1787년 10월경에 이승훈(李承薰), 정약용(丁若鏞) 등이 반촌(泮村)에서 천주교 서적을 읽고 연구하는 걸 목격하고 성토한 사건을 말한다. 이 정미반회 사건을 발설한 사람은 이기경(李基慶)으로, 원래 그는 이승훈, 정약용과는 친밀한 사이로, 그들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대하며 보조를 같이했었다. 그러나 정미년부터 그들과 떨어져 오히려 그들을 반대하고 배척하였다.
그리하여 이기경은 정미년 겨울에 이승훈, 정약용 등이 반촌에 있는 김석태(金石太) 집에 모여서 서학서를 보고 있는 걸 목격했었다고 천주교 배척론자인 홍낙안(洪樂安)에게 폭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홍낙안은 이를 왕에게 알려 그들을 벌 주어야 한다고 극렬하게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서 직접적인 박해가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내려지지는 않았으나, 점차 천주교를 무부무군(無父無君)의 사교(邪敎)라고 하는 상소문이 잇달아 장차 박해를 유발케 한 원인의 하나가 되었다.  

▒ 그라몽(Grammont)
그라몽(1736~1812)은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로 1750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768년 중국으로 파견되어 북경에 머무르면서 흠천감(欽天監)에 종사, 수학자와 통역관으로 활약하였다. 1773년 예수회의 해산령이 중국에 선포된 2년 후에도 그는 계속 1785년까지 북경의 북당(北堂)에 머물렀다. 1784년 동지사를 따라 북경에 온 이승훈에게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줌으로써 교회 창설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 뒤 1785년 광동(廣東)으로 갔다가 1790년 북경으로 되돌아왔으나 병이 재발되어 1812년 북경의 북당에서 사망하였다.

■ ‘한국교회 초석’ 이승훈 묘역, 순례 명소된다
인천교구-인천시 양해각서 체결… ‘이승훈 역사공원’ 조성사업 본격 추진
안내관·수장고 등 갖춘 ‘역사문화체험관’ 건립
시민 휴양공간 함께 조성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아 한국교회 창설의 주추를 놓으며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린 이승훈(1756~1801)이 역사의 무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선교사 없이 신앙을 받아들여 가톨릭교회 역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신앙선조 이승훈 묘역이 일반인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역사공원으로 조성된다. 조선 격변기 인물로 새로운 시대를 향한 물꼬를 튼 이승훈의 역사는 역사공원 내 역사문화체험관에 전시된다.

이승훈은 1784년 중국 북경에서 그라몽(Gramont)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귀국해 한국교회 초창기 새로운 신앙의 길을 열어가는 데 공헌했으나 그에 맞갖은 평가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이승훈은 당시 가성직제도 아래서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줘 한국교회의 초석을 다졌으며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다. 당시 이승훈이 배교선언을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실제 이승훈은 신자들뿐 아니라 선비들 사이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이승훈을 배교자로 허위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를 처형했다는 설도 있다.

재단법인 인천교구 천주교회유지재단(이사장 정신철 주교)은 2018년 4월 19일 인천 남동구 인천시청 접견실에서 인천시(시장 유정복)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승훈 역사공원’ 조성사업을 조속히 추진할 것을 협의했다.
역사공원은 2022년까지 총 125억 원을 투입해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 산135 부지에 4만5831㎡ 규모로 조성될 계획이다. 공원 내에는 한국천주교 역사문화체험관이 1363㎡ 규모로 건립되며, 역사문화체험실과 기록물 안내관, 이승훈 인물 안내관, 이승훈 가계도 안내관, 수장고, 3D 입체모형 등이 들어선다. 또한 이승훈 묘와 체험관을 둘러싼 1만4000여 평의 공원부지에는 산책로와 각종 편의시설을 설계해 시민들의 휴양공간으로 조성된다.
그간 역사공원 조성사업은 그린벨트 내 시설물 건립 등 개발제한, 부지 매입 등의 문제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현재 인천시는 도시계획시설 지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5월에 결정될 예정이다.
유정복(바오로) 시장은 “역사공원이 국내 대표적인 순례 명소이자 관광지로 각광받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했다.
정광웅 신부(교구 성지개발위원회 위원장·이승훈 묘역 성지개발 담당)는 “인천시와 인허가, 예산문제 협의 등으로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협약을 맺은 만큼 사업 추진에 큰 획을 긋게 됐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2011년 이승훈 묘역을 시 지정 기념물 제63호로 지정한 바 있다.

가톨릭신문 [2018-04-29 제3092호]
최유주 기자 yuju@catimes.kr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인천광역시 남동구 장수동 산 132-1 (남동정수장 뒷산)
Mt.132-1, Jangsoo-dong, Namdong-gu, Incheon 
지리좌표 [묘소 앞] 북위 37°27′30.9″ 동경 126°44′62.1″  
연락처 만수1동 성당 (032) 464-0888 FAX (032) 461-0888 
홈페이지 만수1동 성당 http://home.caincheon.or.kr/mansu1/ 
미사시간 [만수1동 성당]
평일 : (월) 오전 6:00, (수금토) 오전 10:00, (화목) 오후 7:30 (토) 오전 10:00
주일 : 오전 6:00, 9:00, 11:00, 오후 7:30, 9:00 (토) 오후 4:00, 7:30 
교통편 [승용차] 서울외곽순환도로 장수IC에서 나와 서창IC 방면으로 오다가 고가도로 밑에서 우측으로 돌면 곧 남동정수장이 나온다. 정수장 오른쪽 모퉁이에 이승훈 묘소 표지가 나오며 여기에서 정수장 오른쪽 울타리를 끼고 산으로 약 20분 정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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