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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완주 천호(다리실)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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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 주로 충청도 교우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룬 교우촌

천호공소는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는 다른 지명을 갖고 있는데, 박해시대에는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고 불렀다. 다리실은 월곡(月谷) 이라고도 썼으며, 용추네는 본래 용이 등천한 내(川)가 있다 해서 용천내라고 했는데 용추네는 용천내가 변한 이름이다. 천호(天呼)라는 행정명(行政名)은 후대에 교우마을이 형성되면서 용천내가 천호로 바뀐 듯하다. 천호마을이 형성된 것은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서였는데 주로 충청도 교우들이 목숨을 보존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이 산골짜기로 숨어 들어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비롯되었다. 교우들이 처음 마을을 이룬 곳은 성인들의 묘지 맞은편 골짜기인 무능골이었다. 그리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 골짜기 밑으로 마을을 이루었다가 다시 서서히 아래쪽으로 내려와 현재의 마을터를 이루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호 성지에 묻힌 순교 성인 중, 손선지 베드로와 한재권 요셉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피신하여 유랑 생활을 하던 중 다리실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으며, 전북 완주군 소양면 대성동 신리골로 옮겨 그곳에 정착하여 살다가 체포되었다. 그리고 1866년 12월 13일 손선지 성인이 처형된 후 그의 아들 손순화(요한)는 70여세 된 할머니 임 세실리아와 어머니 루시아와 동생들을 데리고 천호마을로 다시 피신해 왔다. 이 때 성 한재권과 성 정문호의 가족들은 무능골과 인접한 시목동으로 피신해 왔다.

◆ 다리실 신앙공동체가 겪은 박해
1868년(고종 5년, 무진년)에는 다리실에도 박해의 손길이 뻗혔다. 그래서 6월 9일 문회장, 이요한, 김치선, 김영문(요셉), 장윤경(야고버) 회장 등 천호 신도들이 여산으로 끌려갔는데, 그 중 장윤경 회장은 1868년 10월 1일(양력 11월 14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 때 손선지 성인의 아들 마태오가 사망했는데, 그 사연은 이러하다.

다리실 신도들이 체포되던 날이었다. 손선지 성인의 아들 마태오는 병으로 앓아 누운지 스무날이나 되어 피신하지 못하고 집에 있다가 포교 일행에게 발각되었다. 그들은 마태오를 욱지르며 신도들이 도망간 곳을 대라고 하다가는 체포한 신도들의 압수한 재산을 가지고 여산 관아로 갔다. 그날 밤 마태오의 큰형 요한은 환자가 걱정이 되어 집에 왔다가 환자로부터 포졸들이 남기고 간 말을 듣고는 환자인 마태오를 데리고 산 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그런데 마침 장마철이어서 찬비를 맞으며 3, 4일을 지내고 나니 병세가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려 하였으나 포졸들이 찾아 올 것이 두려워 자기 집으로는 가지 못하고 남의 집에 들어갔다. 그러나 마태오는 불안해서 산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 뿐 다른 생각이 없었다. 요한은 환자가 무엇이든 먹어야 살 것 같아 음식을 주었지만 먹지를 못하더니 마침내 풍증(風症)으로 1868년 6월 12일 1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입전으로는 이런 말이 전해 져 오고 있다. 환자가 몹시 앓고 있는데 포졸들이 다시 마을에 와서 집을 뒤지고 다니다가 환자와 요한이 숨어 있는 집 울안에까지 왔다. 환자는 고열의 고통을 못 이겨 신음하고 있던 터였다. 형 요한은 발각되는 날에는 숨은 곳이 발각되어 떼죽음을 당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환자의 신음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 씌워 누르고 있다가 포졸들이 떠난 후에 이불을 걷어 보니 질식해 숨져 있더라는 것이다.  
박해시대에 천호산 기슭에는 다리실(용추네=천호), 산수골, 으럼골, 낙수골, 불당골, 성채골, 시목동 등 7개의 공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리실, 성채골, 그리고 후대에 터를 옮겨 새로이 시작한 산수골 공소만이 남아 있는데 이들 공소 중 다리실 공소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공소이다. 불당골의 위치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1877년 한국천주교회에는 블랑 신부와 드게트 신부밖에 없었는데, 블랑 신부는 1877년 으럼골을 사목활동의 거점지로 하여 정착한 후, 리우빌 신부와 라푸르카드 신부 등 3명의 선교사가 10여년 동안 이곳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이들 선교사들이 주로 머문 곳은 천호 공소였다. 오늘의 천호 공소는 150여년의 전통을 지닌 교우촌 답게 주민 전체가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교우촌 초창기 교우들은 공소집을 마련하고 신앙교육과 기도생활을 하다가 박해가 끝나고 1913년 현재 경당이 신축된 자리에 기와로 된 공소 경당과 사제 숙소를 지었다. 1953년 화재로 전소된 공소 건물의 신축이 불가피하여 지금 공소 아래 마당 쪽에 초가 형태의 경당을 새로 지어 봉헌하였으나 2003년 오랜 세월에 지붕이 무너지고 건물 자체가 주저앉아 천호공소 경당의 신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5년 재무평의회의 승인을 얻어 공소건물을 철거하였으며 2006년 기공식을 갖고 공사에 들어가 2008년 5월 드디어 새로운 공소 경당을 완공하게 되었다.
천호공소는 천호성지의 초기 형태였는데 지금은 성지에 편입되어 이름만 남고 공소의 모습은 사라져 가는 분위기였으나 새로운 공소 경당을 완공하게 되어 성지 곁에 공소의 옛 모습을 유지한 교우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박해시대 고산지역 교우촌 58개소를 기념한 성당이라는 내용이 새겨진 커다란 돌 기념비가 축성 일자와 더불어 입구에 서있다. 천호(天呼)공소는 천호산 기슭에 자리하여 그 이름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이 하느님을 부르며 사는 신앙 공동체로서 43가구 108명이 모두 신자인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교우촌으로 교회사적인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다리실길 34-21 (내월리 841-2)
34-21, Darisil-gil, Bibong-myeon, Wanju_Gun, Jeollabuk-do  
지리좌표 북위 36°03′12.7″ 동경 127°12′69.4″ 
연락처 천호 성지 (063) 263-1004-5 FAX (063) 263-1006  
홈페이지 천호 성지 http://www.cheonhos.org/  
미사시간 평일 : (화∼토) 오전 11:00
주일 : 오전 11:00  
교통편 [승용차] 호남고속도로 익산IC를 나와 좌측 국도로 진입, 고속도로 아래를 지나 첫 번째 신호등(좌측에 주유소-톨게이트로부터 500m)에서 좌회전하여 백제예술전문대, 비봉면 소재지 3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천호성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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