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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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완주 으럼골(어름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테마 분류 :: 사적지 지역 분류 :: 전주교구 > 완주
12년동안 사제가 상주하여 사목하던 한국 최초의 본당 사목지

박해시대에 천호산 기슭에는 다리실, 산수골, 으럼골, 낙수골, 불당골, 성채골, 시목동등 7개의 공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리실 공소만 남아있는데 이들 공소 중 다리실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공소다. 1877년 한국천주교회에는 블랑신부와 드게트신부 뿐이었는데, 블랑신부는 이 무렵 으럼골을 사목활동의 거점지로 정착한 후, 리우빌 신부와 라푸르카드 신부 등 3명의 선교사가 10여 년 동안 이곳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이들 선교사들이 주로 머문 곳은 천호 공소였다.

초남이가 전주교구 신앙공동체의 못자리라면 비봉면 대치리 으럼골은 제도 교회인 전주교구의 모태와 같다. 1877년 11월 가을 판공이 시작되기 전 블랑(한국명:백삼규) 신부가 어름골에 정착했다. 당시 여러 사정에 의하여 본당으로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블랑 신부가 거처를 정한 이 어름골은 본당과 동등하게 보아야 한다. 1882년 1월 28일 리델 주교가 체포되어 5월 4일 중국으로 추방되면서 같은 해 봄 부교구장인 블랑 신부는 교구장 직무를 대행하기 위해 상경하고 후임으로 리우빌 신부가 부임하여 5년동안 사목한 후 그 후임으로 라푸드카드 신부가 부임했다. 그러다가 고산 되재로 거처를 옮겼다. 이렇게 어름골은 12년동안 사제가 상주하여 사목하던 한국 최초의 본당 사목지이다. 지금은 우물터의 흔적만 남아 있다. 품안길 내 여러 골짜기에는 신앙 선조들이 흩어져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곳들이다.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얼음골(어름골) 에는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된 우물이 있다. 천주교 전주교구사 연구자료집을 보면 1883〜1884년 고산 얼음골 공소에는 교우 44명,사규(四規) 고해자 34명, 사규 영성체자 30명으로 기록돼 있으며 이때 선교담당은 리우빌(Liouville, 유달영) 신부로 기록되어 있다. 리우빌 신부는 1880년 조선 입국에 성공, 11월부터 황해도 산간 옹기마을에서 전교활동을 하다가 1881년 가을 조선교구롤 맡게 된 블랑(Blanc, 백규삼) 주교를 대신해 전라도 지방의 선교를 맡게 되 었다. 1784년 전라도에 천주교회가 설립된 이후부터 1877년까지 이 고장에 상주하면서 전교를 담당한 신부가 없었다. 다만 몇 개의 도(道)를 순회하는 선교사가 전라도 지방에 산재하여 있는 공소들을 방문하였을 뿐이다. 전라도 공소를 순회하면서 성무를 집행한 신부를 시대별로 보면. 1795-1801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1837~1839년 샤스탕(정) 신부, 1846〜1849년 다블뤼 신부, 1850〜1861년 최양업 신부, 1862〜1866년 리델 신부, 그리고 1866 년 병인박해 이후부터 10여 년 동안은 선교사들의 전라도 공소 방문이 중단되고 말았다.

으럼골의 선교 신부는 1877년 블랑(Blanc) 신부로부터 1883년 리우빌(Liouville) 신부, 1887년 보두네(Baudounet) 신부, 1891년 우도(Oudot) 신부, 1893년 비에모(Villemot) 신부로 이어졌으며 1897년 고산(되재)를 담당했던 미알통(Mialon) 신부 이후부터는 1897년∼1898년에 으럼골과 소두러니 교우를 합해서 54명으로 한번 기록하고 있을뿐 으럼골 교우를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다. 으럼골을 비롯한 고산지역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가는 우도 신부의 발령읍 보면 알 수 있다. 뮈텔 주교는 1891년 10월 강원도 원심이(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 본당을 폐지하고 이곳에 계신 우도 신부를 고산지역 본당신부로 발령냈다. 우도 신부의 부임으로 전라도에는 선교사가 상주하는 본당이 3개 설립되었다. 금구 배재본당(베르모렐 신부)-남쪽과 서쪽지역 담당,전주 본당(보두네 신부)-전주와 동쪽지역 담당. 고산 본당(우도 신부)-북쪽지역 담당.

[어름골 가는 길]
천호성지 성당 뒤쪽에 등산로가 있다. 이 등산로를 따라 가다보면 능선에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으로는 천호 산성 길, 우측으로는 산능선 길. 앞으로 는 얼음골 가는길.

두번째 이정표는 으럼골과 산수골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으며, 세번째 이정표는 산수골, 여산 성채골 가는 길 그리고 으럼골과 낙수골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두 번째 으럼골 이정표의 안내를 따라 가다보면 돼 넓고 평평한 임도(林道)가 나오는데 중간에 나뭇가지로 막아 놓은 곳이 있다. 이곳에서 왼쪽을 보면 산이 가파르고 좁은 길이 하나 보인다. 이 길로 조금 오르다 보면 능선이 나오고 능선부터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밤나무 참나무 낙엽을 밟으면서 가다보면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 나오고 이 물에 손을 담그면 시원함과 함께 계곡축대에서 선조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계곡을 건너면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금방 느낄 수 있는 우물과 감나무 은행나무가 가슴에 와닿는다. 천호성지에서 걸어서 한 시간 가량 걸린다.
체포하러 오면 천호, 산수골, 성채골, 낙수골 등의 길을 따라 산속 깊이 피신하면서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얼음골! 지금은 우물만 남아 있지만 한국 천주교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 우도 신부(Oudot, Paul, 오보록 吳保祿, 1865∼1913)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1888년 9월 22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페낭 신학교에 파견되었으나 더운 기후를 이겨내지 못하여 곧 조선으로 전임되었다. 1890년 10월 24일 조선에 입국한 우도 신부는 1891년 10월10일 전라도 고산 차돌백이(현 백석) 주임으로 발령받아 사목 활동을 하다가 1893년 4월 22일 부산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으며, 1898년 7월 황해도 매화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많은 토지를 매입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농민들에게 소작을 줌으로써 전교 활동을 활성화시켜 1899년 한 해 동안 500여 명의 영세자가 배출되는 둥 본당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또 우도 신부는 종교 교육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황해도 지역 최초의 사학(私學)이라고 할 수 있는 봉삼학교(奉三學校)를 설립하였는데,봉삼학교는 남자부와 여자부로 구분되어 남학생들에게는 교리 및 한문을, 여학생들에게는 기도문,한글, 가사(家事) 등을 가르쳤다. 그는 매화동 본당에서 약 15년 동안 사목하면서 전교회, 성의회(聖衣會), 예수 성심회, 성모 성심회, 매괴회 등 여러 신심 단체를 조직하고 성영회(聖嬰會)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우도 신부는 1913년 10월 31일 선종하여 매화동 본당 내에 묻혔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대치리 401
401 Daechi-ri, Bibong-myeon, Wanju_Gun, Jeollabuk-do  
지리좌표 북위 36°04′75.4″ 동경 127°14′14.4″ 
연락처 천호 성지 (063) 263-1004-5 FAX (063) 263-1006  
홈페이지 천호 성지 http://www.cheonhos.org/ 
미사시간 [천호 성지]
평일 : (화∼토) 오전 11:00
주일 : 오전 11:00  
교통편 [승용차] 천호성지에서 품안길 성지 표시를 따라 1시간 거리에 있다. 
전주교구의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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