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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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부안 등용 성당
테마 분류 :: 사적지 지역 분류 :: 전주교구 > 부안
김대건 신부 집안 후손이 형성한 교우촌

부안 지방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로 충청도에서 거룻배를 이용하여 건너와 해안과 인접한 부안에 숨어 살며 교우촌을 이루면서이다. 등용리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김양배(요한) 초대 공소회장에 의해서이다. 그는 성 김대건 신부의 방계 후손이며 또한 김대건 신부의 당질로서,성인의 순교 정신을 본받아 동정부부 생활을 하였던 김현채(토마스)의 양자였다. 그의 가족은 충남 아산에 살다가 병인박해 때 피란을 와 해안 가까운 불무동 산골짜기에 움막을 짓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지냈다.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어 담배농사를 지어 어렵게 모은 돈으로 등용리 일대의 갈밭을 매입하여 친척과 교우들을 불러들여 김씨,김 회장 댁의 진외가인 서씨, 고종지간인 안씨, 동서지간인 방씨 등 친족이 모여 1903년 교우촌을 이루었다. 김 회장은 신덕과 인애로 어려운 교우들을 구제하였고,김 회장의 큰아들 종락(마태오) 역시 아버지의 뜻을 이어 춘궁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수지를 파거나 밭을 개간하게 하여 품삯을 주어 연명토록 하였다.

김양배 회장은 1918년 8월 2일 평소의 꿈이었던 성당 20평과 사제관 8평을 준공하여 신부님 모시기를 갈망하자, 그해 12월 8일 드망즈 주교님께서 이곳을 방문하여 ‘성모칠고’를 주보로 정하고 봉헌식을 가졌다. 등용 공소는 1926년 대구교구 이기수(야고보) 신부가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본당을 설립하고 김양배(요한)를 초대 사목회장으로 임명하여 나날이 번창해 갔다. 이기수 신부는 문맹을 퇴치하고 아이들의 교리교육과 나아가서 계몽활동을 펼 목적으로 1932년 4년재 학술강습소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김양배 회장의 둘째 아들 김종기(요셉)가 맡아 운영하였다. 김종기의 사위인 박노춘과 김문배, 김경태가 교사였는데 한 학년에 20여 명씩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35년 이기수 신부는 1개 군에 1개 본당은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본당을 부안읍으로 옮겨 부안 성당이 되고 이곳은 공소가 되었다. 2010년 1월에 본 성당으로 다시 승격되었다. 전북에서 가장 일찍 세워졌던 성당이 다시 본 성당이 된 아주 작은 성당이다.그리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민족의식율 질식시키기 위한 일본의 탄압정책으로 등용리 학술강습소가 폐교되었다. 하지만 청년들의 봉사로 문맹퇴치를 위한 활동은 계속되었다. 1950년 한국동란 시에도 천주교 신자 마을이라서 많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가 있었다.

공소와 담 사이에 2002년 ‘천주교 성인공파’ 라는 독립된 분파를 만든 신앙의 명가 김대건 신부님의 종가가 있는데,4대 공소회장인 김병태(야고보)의 큰아들이며 9대손인 김겸준(요한) 현 공소회장이 살고 있다. 그 종가에 얽힌 이야기는 마율에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6.25 전쟁 때 인민군둘이 마을에 불을 질러 80가구 중 40가구가 불에 탔다. 그 종가도 주변의 초가집 3채, 사랑채, 창고, 잠실, 헛간 등 4채를 다 태우고 몸채로 불이 옮겨 붙었는데. 마루 바로 앞 문 지방에서 기적적으로 꺼졌다고 한다. 당시 그곳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물인 족보 38 권, 구 서적 5권, 성작2개,제의 10벌, 라틴어 경본을 보관하고 있었다. 현재 그 유물들은 솔뫼 성지에 기증하여 보관하고 있다.

■ 천주교 성인공파 가계도
김해 김씨 안경공파는 2000년 판 경진세보를 발행하며 천주교 성인공파를 분파하였다. 즉 김해 김씨 안경공파 아산공문중 천주교 성인공파이다. 천주교의 순교자 김진후(譜名, 運祚.) 비오를 파조로하여 그의 네 아드님 종현(부안), 택현(대전/논산), 한현(종한,안드레아), 희현(익산)과 동생인 김귀조(정읍)와 그 후손을 천주교 성인공파로 분파한바, 파조 김운조(震厚)로부터 시작하여 현재 11대의 후손에 이르고 있으며, 2002년 9월 15일(추석 전주일) 솔뫼 성지에서 창립 총회를 거쳐 천주교 성인공파 종회를 설립하였다. 후손들은 4개의 (부안, 대전/논산, 익산, 정읍)집안으로 분포되어 있다.

1, 김종현(宗連, 자 희안 1764~1824) [부안 집안]
파조 김진후(運祚, 비오)의 큰아들로 1764년 충청도 면천 고을 솔뫼에서 부친 김진후<運祚>비오와 모친 유씨(兪氏)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법망을 피해 경상도와 전라도 산골로 피신을 다니며 포교 활동을 했고 여러 지방으로 숨어 다니며  주문모 신부를 도와서 박해 중에서도 열심히 포교 활동을 했으므로 훌륭한 신앙의 증거자였으며 나중에 큰아들 제광(1780-1863) 가정과 함께 고향 솔뫼에 있다가 1824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 후 후손들은 전북 부안에 터를 잡고 살았기에 지금도 종현의 후손들을 부안 집안이라 부르고 있다.

2, 김택현(자는 春奉, 혹은 종원 1766~1830) [대전/논산집안]
파조 김진후(자 億金, 譜名 運祚) 비오와 모친 유씨(兪氏)사이에 둘째 아들로 1766년 4월 7일에 충청도 면천고을 솔뫼에서 태어났으며 본인도 순교하였고 아들 제준, 손자 지식(대건)등도 순교하였다, 후손들이 대전과 논산에 터를 잡고 살았으므로  택현의 후손들을 대전/논산집안 이라 부른다
(순교자 : 김택현, 아들 제린(제준), 손자 지식(대건), 손자 근식, 손자 진식, 손자 선식)

3, 김종한(譜名 漢鉉) 안드레아 [절손됨]
충남 면천 솔뫼(현 당진군 우강면 송산)에서 파조 김운조(진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798년경에 처자와 자녀 김 데레사를 데리고 경상도 일월 산중인 안동 고을 우련밭(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 우련전)으로 가서 17년 동안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았다. 거기서 그는 오직 애긍에 힘쓰고, 기도와 성서 읽기와 그 밖의 모든 신자 본분을 지키는 일에만 부지런하였으며 1816년 11월 1일(음)에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을 당했다.
(순교자 : 김한현(宗漢), 딸 김제신 데레사, 사위 손연욱 요셉)

4, 김희현(자 秀元 1785~1839) [익산집안]
그는 1785년에 부친 김진후(운조)와 모친 유씨(兪氏) 사이에 넷째 막내아들로 충청도 면천고을 솔뫼에서 태어났다. 1815년 을해박해가 있은 후 1827년 정해박해 때 혹은 1839년 기해박해 때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공주에서 순교를 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명집(濟恒) 루도비꼬도 병인 박해 때 순교를 했다. 후손들은 제항의 아들 경식의 부인이 순교한 후 천등산의 옥배 마을로 찾아들어 거기서 피난 생활을 하면서 숯을 굽고 옹기를 구우면서 살다가 고산 구제리등을 거쳐 익산으로 나와 터를 잡고 살았으므로 지금도 희현의 후손들을 익산집안이라 부른다.
(순교자 : 김희현, 아들 제항(明集) 루도비꼬, 손자 며느리, 무명인 손자, 경식의 처))

■ 찾아 가는 길

■  순례 정보
소재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등용길 13 (장신리 59-3)
13, Deungyong-gil, Haseo-myeon, Buan-gun, Jeollabuk-do 
지리좌표 북위 35°71′27.2″ 동경 126°62′65.8″ 
연락처 등용 성당 (063) 582-4547 FAX (063) 582-4542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미사시간
평일 : (화목) 오후 7:30, (수금) 오전 7:00
주일 : 오전 10:30  
교통편 [승용차] 부안군에서 남쪽으로 23번 지방도로로 따라 가다가 남포재 저수지 주변 SK현우주유소에서 우회전하여 사창길을 따라 계속 골짜기로 진행한다.  
전주교구의 사적지
 군산 신시도 최양업 토마스 신부 난파 체류지  최양업 신부가 귀국중 난파로 30여 일간 머문 곳  군산
 김제 백자 공소  박해를 피해 옮겨와 옹기촌을 형성하며 이루어진 교우촌  김제
 논산 마전 공소  행정구역은 충남이나 전주교구 여산 성당에 속한 공소  논산
 무주 무풍 공소  수도자 4명을 배출한 무주에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공소  무주
 부안 덕림(무내미) 공소  정복조 시몬의 전교에 힘입어 발전한 공소  부안
 부안 만석 공소  김양홍 초대 전주교구장을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 교우촌  부안
 순창 쌍치 공소  순창지역 신앙 공동체의 출발지인 교우촌  순창
 순창 오룡(학선) 공소  병인박해 때 충청도, 변산 등지 교우들의 피난처  순창
 완주 경천 공소  대둔산 길목인 완주군 경천면에 자리잡은 교우촌  완주
 완주 구제 공소  박해시대부터 교우촌으로 형성된 고산 지방의 공소중 하나  완주
목록
71   전주교구 : 완주 먹방이 공소
병인박해 후 선교사들이 거주하면서 전교하던 고산 지방의 공소
전라북도에도 일찍이 많은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대부분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피난 온 신도들이었다. 이들은 일...
70   전주교구 : 완주 구제 공소
박해시대부터 교우촌으로 형성된 고산 지방의 공소중 하나
본래 고산ᅡ군 운동상면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구제리(九悌里)는 ‘구더리’ ‘구덕리’ 라 부르기도...
69   전주교구 : 완주 석장 공소
1883년에 설립된 고산 지방 공소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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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전주교구 : 진안 한들 공소
진안 지역과 장수군 일부 지역의 전교 중심지 공소
1876년경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는 충청도 등지에서 피난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 삼바실, 절골, 모시골, 절번...
67   전주교구 : 무주 무풍 공소
수도자 4명을 배출한 무주에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공소
우리나라 10대 명승지의 하나로 지목되며 왕족들의 숙소인 명례궁이 있을 만큼 풍광이 뛰어난 무풍지역은 일...
66   전주교구 : 익산 석동 공소
사제와 수도자들을 배출한 성소의 공소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선상에 있는 용안 지역은 앞에는 장수 수분리에서 내려오는 맑은 금강이 흐르고,뒤에...
65   전주교구 : 완주 수청리 공소
신앙생활의 본거지 역할을 담당하며 인근의 교우촌올 관할했던 본당
완주군 운주연 구제리에 위치한 고산 성당 수청 공소는 1888년에 설립되었다. 고산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
64   전주교구 : 완주 천호(다리실)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1839년 기해박해를 전후해 주로 충청도 교우들이 신앙 공동체를 이룬 교우촌
천호공소는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는 다른 지명을 갖고 있는데, 박해시대에는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고 불렀다. ...
63   전주교구 : 완주 으럼골(어름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12년동안 사제가 상주하여 사목하던 한국 최초의 본당 사목지
박해시대에 천호산 기슭에는 다리실, 산수골, 으럼골, 낙수골, 불당골, 성채골, 시목동등 7개의 공소가 있었...
62   전주교구 : 완주 낙수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복자 박경진과 오 마르가리타의 아들 박준복이 선덕을 베플며 살던 교우촌
고산 낙수골 교우촌은 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 (1835∼1868년)와 복자 오 마르가리타 ( ? ∼1868년) 부부...
61   전주교구 : 완주 산수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순교자 전 마리아가 거주하던 곳
현재의 산수골 공소는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 옮겨진 곳이고 1868년 이곳에 사는 박 베드로와 그의 아내 ...
60   전주교구 : 완주 시목동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정문호, 한재권 성인이 순교한 후 그 가족들이 피신해 살던 곳
다리실과 가깝게 인접한 곳이다. 1866년 12월 13일 정문호, 한재권 성인이 순교한 후 그 가족들이 이곳...
59   전주교구 : 익산 성채골(성치)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전주교구장 고 김현배 주교와 이병호 주교가 출생한 곳
순교자들의 거룩한 얼이 숨쉬는 여산 지역 최초의 공소로, 1886년 되재 성당의 리우빌 신부에 의해 설립되...
58   전주교구 : 김제 백자 공소
박해를 피해 옮겨와 옹기촌을 형성하며 이루어진 교우촌
전북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백자동에 위치한 신풍 성당 백자 공소는 1885년 경 익산시 함라에 살던 유군심 ...
  전주교구 : 부안 등용 성당
김대건 신부 집안 후손이 형성한 교우촌
부안 지방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로 충청도에서 거룻배를 이용하여 건...
56   전주교구 : 부안 만석 공소
김양홍 초대 전주교구장을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 교우촌
등룡리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던 만석 공소는 1883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만석동에 설립되었다. 흙...
55   전주교구 : 부안 덕림(무내미) 공소
정복조 시몬의 전교에 힘입어 발전한 공소
무내미(현 덕림) 공소는 임피 산곡에 살던 정복조 시몬 회장의 전교에 힘입어 가장 큰 공소로 성장하였다. 1...
54   전주교구 : 정읍 등천 공소
순교자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룩한 교우촌
전북 정읍시 입암면 시기동 본당 등천리 공소는 1895년 라크루 신부(마르첼리노, 구마슬 具瑪瑟, 1871-1929...
53   전주교구 : 정읍 죽림 공소
을해, 정해박해 때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의 교우촌
정읍시 쌍암동에 위치한 죽림공소는 1885년 리우빌 신부(아나톨,1855-1893, 유달영, 1881년에 전라도 ...
52   전주교구 : 순창 쌍치 공소
순창지역 신앙 공동체의 출발지인 교우촌
쌍치는 순창지역 신앙 공동체의 출발지이다. 1882년부터 작성된 사목방문 보고서에는 쌍치의 내동, 대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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