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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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부안 만석 공소
테마 분류 :: 사적지 지역 분류 :: 전주교구 > 부안
김양홍 초대 전주교구장을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 교우촌

등룡리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던 만석 공소는 1883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만석동에 설립되었다. 흙이 없고 돌만 있는 곳이라 하여 만석(萬石)이라 불리워졌다 한다. 마을 뒤쪽으로 내변산의 줄기인 감로봉이 흡사 호랑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형상으로,산세가 마올 전체를 감싸고 눈을 부릅뜬 채 바라다보는 형상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느끼게 한다.

남포리에는 조선조 중엽까지 조수가 왕래하여 선박이 드나들던 곳으로,충청도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와 산속에 숨어살기 좋아 교우촌올 형성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광산 김씨인 김덕연(김양홍 스테파노 전주교구장 부친)은 충청도에 박해가 심해 집이 불타버리자 김지순(김양홍 스테파노 전주교구장 조부)을 비롯하여 식솔들을 이끌고 만석동 산골로 숨어 들어와 열심히 수계생활을 하며 초대 공소회장을 하였다. 또한 1883년 전남 장홍에 살던 김기옥 미카엘 (대구교구 김창현 몬시놀의 조부)은 군난 박해를 피해 전남 장성군 탑성리에 숨어 살다가 부안 변산면 노적리 신골로,1886년에는 만석동 김덕연의 바로 아랫집으로 이사를 왔다. 두 집은 서로 친형제처럼 지내면서 열심히 전교활동을 펼치며 공소를 이끌어갔다.

1915년에는 김덕연의 장남인 김양희(김양홍 초대 전주교구장 큰형)가 2대 회장이 되면서 신자수가 늘어 3백 여명에 이르자 1915년에 김회장의 밭에 4칸 접집의 공소를 지은 후 1919년에 현 위치로 건물을 뜯어 옮겼다. 1919년 3대 회장에 김상현(요한)이 임명되었고, 1926년에는 등용 본당 소속의 공소가 되었고, 193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35년 부안 본당을 지을 목재는 만석에서 목재를 베어 지을 정도로 만석동 공소 신자들의 신앙심은 깊었다.
6.25 전쟁 때 건물이 크게 훼손되어 1958년에 헐고 새로 신축하였다. 이곳 출신 서용복 신부가 제대, 십자고상, 의자 등을 마련해 주었으며 안철문 신부 재임(1988-1991) 당시 한 칸을 증축하였다. 2000년 5월 7일에 건평 25평 규모의 철골 슬래브조 벽돌 건물은 축성하였다.

부안 지역에 신자가 거주하게 된 것은 1839년 기해박해 이후부터란다. 최양업 신부님의 편지에는 1847년 진서면 석포리 대소에 신자 마을이 있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교세 보고서에는 1882년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박해를 피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거나,숨어 살면서 신분을 노출하지 않았던 당시 신자들의 생활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이곳은 전주교구 초대 교구장 김양홍 신부 출생지이기도 하다. 김덕연은 슬하에 김양희,양홍,양삼 세 아들을 두었다. 그 중 둘째 아들인 김양홍 스테파노가 1900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김 신부는 전주교구 두 번째 신부이며 1937년 초대 전주교구장으로 부임하였다. 1919년에는 김상현 요한이3대 공소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동안 신성리 성당 관할 공소였던 만석 공소는 1926년 부안 등룡리 성당의 공소가 되었으며, 1930년 공소 건물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50년 4대 공소회장이 된 임기봉 베드로는 사랑채에 야학을 열어, 노인과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그러자 까막눈이던 신자들도 자동적으로 한글을 익히게 되었다. 1958년 5대 공소회장이 된 김익호 알렉시오(대구교구 김창현 몬시놀의 증손자)는 교우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등 만석 공소의 기둥역할을 하였다.

만석 공소는 또한 많은 신부와 수도자 배출의 산실로도 자부심 대단하다. 이곳은 김양홍 스테파노 초대 전주교구장, 김창현 바오로 신부, 김영태 도미니코 신부, 김치삼 스테파노 신부,서용복 토마스 신부 등과 이곳을 떠나 수도자가 된 손선지 후손인 손용환 요셉 신부과 손용철 안드레아 수사, 이치국 비지노 신부, 이해석 벨라도 신부, 김형수 비오 신부 둥 많은 사제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김원중 루시아(김치삼 신부 큰조카) 수녀, 김현숙 엘리사벳 (김익호 회장의 딸) 수녀, 김정숙 발라바 수녀, 손영자 안드레아 수녀 등이 배출된 수도성소의 못자리이다. 만석 공소의 교우수는 현재 23세대에 남자 13명 여자 26명이다.
이곳은 마을의 특산물인 대봉시(감)를 집단으로 재배하여 감골이라고 불린다. 물 빠짐이 좋아 감 농사가 잘 된단다. 가을이면 마을 전체가 홍시로 빨갛게 물이 드는데 노을에 비춰진 그 비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고 한다.

■ 찾아 가는 길

■  순례 정보
소재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사창길 112 (남포리 614)
112, Sachang-gil, Boan-myeon, Buan-gun, Jeollabuk-do  
지리좌표 북위 35°64′15.3″ 동경 126°65′96.0″ 
연락처 만석 공소 임순선 프란치스코 회장 (063) 582-3696 010-3312-3696
줄포 성당 (063) 581-0241 (FAX 겸용)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줄포 성당]
평일 : (화목) 오후 7:00, (수금) 오전 10:00
주일 : 오전 10:30 (토) 오후 6:00  
교통편 [승용차] 부안군에서 남쪽으로 23번 지방도로로 따라 가다가 남포재 저수지 주변 SK현우주유소에서 우회전하여 사창길을 따라 계속 골짜기로 진행한다. 
전주교구의 사적지
 군산 신시도 최양업 토마스 신부 난파 체류지  최양업 신부가 귀국중 난파로 30여 일간 머문 곳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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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 무풍 공소  수도자 4명을 배출한 무주에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공소  무주
 부안 덕림(무내미) 공소  정복조 시몬의 전교에 힘입어 발전한 공소  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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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창 오룡(학선) 공소  병인박해 때 충청도, 변산 등지 교우들의 피난처  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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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주 구제 공소  박해시대부터 교우촌으로 형성된 고산 지방의 공소중 하나  완주
목록
71   전주교구 : 완주 먹방이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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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전주교구 : 완주 구제 공소
박해시대부터 교우촌으로 형성된 고산 지방의 공소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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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전주교구 : 완주 석장 공소
1883년에 설립된 고산 지방 공소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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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전주교구 : 진안 한들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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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경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는 충청도 등지에서 피난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 삼바실, 절골, 모시골, 절번...
67   전주교구 : 무주 무풍 공소
수도자 4명을 배출한 무주에 현존하는 제일 오래된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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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전주교구 : 익산 석동 공소
사제와 수도자들을 배출한 성소의 공소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 선상에 있는 용안 지역은 앞에는 장수 수분리에서 내려오는 맑은 금강이 흐르고,뒤에...
65   전주교구 : 완주 수청리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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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 운주연 구제리에 위치한 고산 성당 수청 공소는 1888년에 설립되었다. 고산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된 ...
64   전주교구 : 완주 천호(다리실)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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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공소는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는 다른 지명을 갖고 있는데, 박해시대에는 다리실 또는 용추네라고 불렀다. ...
63   전주교구 : 완주 으럼골(어름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12년동안 사제가 상주하여 사목하던 한국 최초의 본당 사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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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전주교구 : 완주 낙수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복자 박경진과 오 마르가리타의 아들 박준복이 선덕을 베플며 살던 교우촌
고산 낙수골 교우촌은 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 (1835∼1868년)와 복자 오 마르가리타 ( ? ∼1868년) 부부...
61   전주교구 : 완주 산수골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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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전주교구 : 완주 시목동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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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전주교구 : 익산 성채골(성치) 공소 [박해시대 천호산 기슭 7개 공소]
전주교구장 고 김현배 주교와 이병호 주교가 출생한 곳
순교자들의 거룩한 얼이 숨쉬는 여산 지역 최초의 공소로, 1886년 되재 성당의 리우빌 신부에 의해 설립되...
58   전주교구 : 김제 백자 공소
박해를 피해 옮겨와 옹기촌을 형성하며 이루어진 교우촌
전북 김제시 용지면 부교리 백자동에 위치한 신풍 성당 백자 공소는 1885년 경 익산시 함라에 살던 유군심 ...
57   전주교구 : 부안 등용 성당
김대건 신부 집안 후손이 형성한 교우촌
부안 지방에 천주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박해를 전후로 충청도에서 거룻배를 이용하여 건...
  전주교구 : 부안 만석 공소
김양홍 초대 전주교구장을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 교우촌
등룡리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던 만석 공소는 1883년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만석동에 설립되었다. 흙...
55   전주교구 : 부안 덕림(무내미) 공소
정복조 시몬의 전교에 힘입어 발전한 공소
무내미(현 덕림) 공소는 임피 산곡에 살던 정복조 시몬 회장의 전교에 힘입어 가장 큰 공소로 성장하였다. 1...
54   전주교구 : 정읍 등천 공소
순교자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이룩한 교우촌
전북 정읍시 입암면 시기동 본당 등천리 공소는 1895년 라크루 신부(마르첼리노, 구마슬 具瑪瑟, 1871-1929...
53   전주교구 : 정읍 죽림 공소
을해, 정해박해 때 충청도에서 피난 온 신자들의 교우촌
정읍시 쌍암동에 위치한 죽림공소는 1885년 리우빌 신부(아나톨,1855-1893, 유달영, 1881년에 전라도 ...
52   전주교구 : 순창 쌍치 공소
순창지역 신앙 공동체의 출발지인 교우촌
쌍치는 순창지역 신앙 공동체의 출발지이다. 1882년부터 작성된 사목방문 보고서에는 쌍치의 내동, 대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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