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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 김해 서성겸(응권) 가족 묘
테마 분류 :: 사적지 지역 분류 :: 마산교구 > 김해
병인박해 때 박근기 사건으로 순교한 서성겸 가족 묘

경상남도 김해 지방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이 지방에 귀양 온 이학규에 의해서 순교자 박대식 라우렌시오 가정이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였다. 서성겸은 경상도 김해 노루목(現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에서 세례 받은 후 농사일을 하며 부인 윤씨와 여섯 자녀와 함께 열심히 살았다.

1868년 5월 부산에서는 이른바 박근기(朴根基) 사건이 발생했다. 박근기를 비롯하여 서달서, 서근서, 서상달, 서성겸과 노재익 등은 부산에 살고 있는 왜인들을 통해서 서양 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노력할 것을 의논하고서 그 실천을 위하여 노력하던 움직임이었다. 박근기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동참했던 사람들에게는 체포령이 내려졌다. 서성겸은 거주지인 김해 노루목에 피신해 숨어있었다. 하지만 포졸들이 그곳까지 와서 서성겸 부부를 체포하려 했으나 찾지 못하자 어린 자 녀 셋을 해치고 돌아갔다. 큰 아들 석원 베네딕도(20세)와 둘째 서석형(16세)과 셋째 석수(13세)는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라는 부모님들의 부탁을 받았지만 포졸들이 갑자기 덮치자 당황하여 동생들은 버려둔 채 사방으로 도망을 했었던 것이나. 이리하여 어린 동생들은 포졸들에게 무참히 죽었다.
어린 자녀들의 죽음을 알게 된 서성겸과 부인 윤씨는 함께 김해 관아에 자수했다. 부부는 혹독한 문초와 심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이후 부부는 이미 잡혀와 있던 다른 교우들과 함께 관아에서 교살되어 순교하였다. 그들의 시신은 인근 야산에 아무렇게나 묻혔다. 2달 후 자녀와 친척들이 관의 허락아래 시신을 옮기기 위해 구덩이를 파니 시신이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이것을 보고 모두들 ‘정말 하느님께서 보살피셔서 기적이 일어났구나!’ 하며 감탄하였다. 가족들은 순교자의 시신을 선산에 모시려 했지만 친족들의 반대로 김해시 주촌면 내삼리 인근 야산에 임시 안장을 했다가 1909년 4월 순교자의 삼남 서석수 비오가 현 위치에 모셨다.

그후에 서성겸의 다른 남은 자녀 3명인 석원, 석정, 석수는 부모들과 같이 순교는 하지 않았지만 계속 이곳 노루목에 살면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후손들을 많이 낳았다. 그의 후손들 중에는 현재 김해군 이북면 장방리(노루목)에 살면서 공소회장을 하고 있는 5대 종손 서성효 마태오 씨와 서정의 수사(왜관 성베네딕토 수도회)와 서경윤 알베르또 신부(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 및 서원열(마산교구) 신부가 있으며, 최재선 주교(부산교구)와 박도식 신부, 박문식 신부(대구대교구), 김재문 신부(안동교구)는 이 순교자의 외손이 된다.

■  순교자

◆ 서성겸(徐聖兼, 요한, 1827-1868)
달성 서씨(達成徐氏)의 현감공파인 서응권(성겸)은 김해군 이북면 장방리에 살았다. 그의 집안은 당시 나라의 높은 벼슬을 한 문벌이 대단히 좋은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체 관직에 나가지 않고, 오직 신앙생활에만 열심한 신자였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서 많은 신자들이 관가에 잡혀가서 무수히 매를 맞고 순교륵 하여 그 참상이 극치에 다달았다. 이에 깊은 우려를 느낀 그와 친척 형제인 듯한 서달서, 서근서, 서상달과 박근기, 노재익 등은 부산에 살고 있는 왜인들을 통해서 서양사람들에게 호소하여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노력할 것을 의논하고서 그 실천을위하여 노력하던 중에 마침내러 관가에서 이를 알고서 이들에게 체포령을 내렸다. 박근기 사건이다.
그는 김해의 노루목 본가에서 이 소식을 들고 급히 부인 윤씨(윤씨)와 함께 피신하면서 장남 석원(베네딕도)에게 동생들을 잘 보살피라는 부탁을 하고. 부부는 마침 그때 마을 부근에 사람이 죽어서 장례식을 할 때까지 임시 매장한 토묘를 발견하고서 그 속에 들어가서 3일간을 숨어 지냈다,그동안 토묘 안에서, 준비해간 긴 옹기병의 물과 콩고물을 묻힌 밥으로연명하며, 포졸들의 요란한 발자욱 소리에 긴장하면서 3일을 지낸 후에 밤을 틈타서 나와보니, 뜻밖에도 6자녀 중 3자녀가 포졸들에게 무참히 칼을 맞아 죽은 끔찍한 참상이 눈 앞에 벌어져 있었다.
큰 아들 석원 베네딕도(20세)와 둘째 서석형(16세)과 셋째 석수(13세)는 어린 동생들을 잘 돌보라는 부모님들의 부탁을 받았지만 포졸들이 갑자기 덮치자 당황하여 동생들은 버려둔 채 사방으로 도망을 했었던 것이나. 이리하여 어린 동생들은 포졸들에게 무참히 죽었다. 즉 포졸들이 마을을 덮쳐서 이들의 집이 어디냐고 묻자, 동네 꼬마들이 "바로 저 아이들이 있는 집입니다"라고 순진하게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포졸들이 집안에 들어서면서 "너희 부모들이 어디 있느냐?" 하고 아이들애게 무서운 얼굴을 히고서 다그쳐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모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몹시 화가 난 포졸들은 칼을 휘둘러서 나이어린 이들 3자녀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때 죽은 3자녀는 아들 2명과 딸 1명인데 나이가 7세,4세 및 갓 돌이지난 1살 난 젖먹이였다. 이에 심한 층격을 받은 두 부부는 "우리 대신 이 어린것들이 모두 죽고 말았으니, 또 이제 이곳에서 농사도 지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우리만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 차라리 자수하여 어린 것들과 함께 순교를 하자" 하면서 관가에 스스로 달려가 자수를 했다. 그러자 관헌들은 다른 잡혀온 많은 신자들과 함께 이들에게 심하게 심문을 하고 또한 쭈삣 쭈삣한 쇠송 곳 여리 개를 불에 달구어 세워놓고서 "너희들이 앞으로 성교를 믿으려고 하면 이 송곳들을 밟고 지나가고, 안 믿겠다면 지나가지 않아도 된다"라호 말했다.
그러자 그와 그의 부인은 서슴없이 뜨거운 송곳들을 밟고 지나갔고 또한 다른 많은 신자들도 지나갔다. 이번에는 포졸들이 이들에게 더윽 혹독한 형벌을 가하였다. 물론 이때 "믿지 않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풀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끝까지 신앙을 고백한 그와 그의 부인 및 남은 신자들은 모두 참수 순교하였다. 그들이 순교를 한 후에 그들의 시신들을 그 자리에 큰 구덩이를 파고서 함께 묻었다. 그러나 2달 후에 가족들이 그들의 시신을 갖다 묻기 위해서 무덤을 파니 신비롭게도 시신들이 하나토 상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살아 있는 모습처런 그냥 있었다. 물론 이미 초여름의 뜨거운 날씨였지만 말이다. 이것을 보고 모두들 "정말 하느님께서 보살피셔서 기적이 일어났구나!"하면 서 감탄하였다. 각 시신을 찾아서 염습을 하고 다시 매상을 하려고 하자 그제야 시신에선 피가 나온다. 이렇듯 서성겸과 그의 부인 윤씨와 자녀 3떵 및 다른 많은 신자들은 믿음을 증거하다가 장하게 순교하였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산106
Mt. 106, Sirae-ril, Jillye-myeon, Gimhae-si, Gyeongsangnam-do 
지리좌표 북위 35°25′10.3″ 동경 128°73′29.9″ 
연락처 진례 성당 (055) 345-3226 FAX (055) 354-3227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진례 성당]
평일 : (화수목금) 오후 7:30
주일 : 오전 10:30 (토) 오후 6:30  
교통편 [승용차] skago 고속도로 진례IC에서 내려온다. 직접 찾아가기가 어려우니 진례 성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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