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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 진주 진영과 옥 터
테마 분류 :: 성지 지역 분류 :: 마산교구 > 진주
복자 정찬문, 구한선, 윤봉문이 장살과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

임진왜란 때 울산에 경상 좌병영, 진주에는 경상 우병영이 있었다. 1592년 10월과 1593년 6월에 벌어진 진주성 1, 2차 전투로 호남으로 통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진주의 위상이 부각되면서 1602년 경상우도 병마절제사영, 곧 경상 우병영이 창원 합포(마산)에서 진주성 안으로 옮겨온 것이다.
경상 좌병사가 울산 도호부사를 겸직하던 경상 좌병영, 곧 울산 병영은 순교지가 됐지만 경상 우병영은 순교지가 되지 않았고, 진주 목사가 집무하던 치소, 곧 진주 진영이 순교지가 됐다. 정3품인 진주 목사는 종2품인 경상 우병사보다 품계가 낮았지만, 문관인데다 행정권에 사법권, 병권까지 갖고 있어 산하 부서인 진주 진영장을 통해 사학죄인이던 천주교 신자들을 문초하고 형벌을 집행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병인박해 때 순교한 복자 정찬문(鄭燦文, 1822~1867, 안토니오)과 복자 윤봉문(尹鳳文, 1852~1888, 요셉)은 진주 진영과 진주 옥에서 순교했고, 리델 신부 복사였던 복자 구한선(具漢善, 1844~1866, 타대오)은 진주 진영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집으로 돌아와 장독으로 이레 만에 선종했다.
지금의 진주중앙요양병원에 자리에 18세기 진주성 공북문 앞 대사지(大寺池) 인근에 정찬문 순교복자 등이 신앙을 증거하고 피를 흘린 순교 터인 진주 진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진영이 바로 순교 복자들의 증거 터이자 순교 터다.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따르면, 진주 진영 뜰, 곧 영정은 정찬문 복자가 치명한 곳으로 기록돼 있다. 다만 124위 순교복자 약전엔 그가 다시 옥으로 끌려 들어간 뒤 그날 밤에 숨을 거뒀다고 기록돼 있어 정확한 순교 터는 현재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옛 진영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금의 진주시 촉석로 178 진주 중앙요양병원 자리로 추정된다.
진영에서 500m도 안 되는 자리에 있는 옥터는 정천문 복자가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 치명한 곳으로, 또 거제 회장에 임명돼 로베르 신부를 안내했던 윤봉문 복자가 혹독한 문초를 받으면서도 십계명을 외며 신앙을 굳게 증거하다 교수형을 받고 순교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까지만 해도 진주 옥은 경남 진주시 진양호로547번길 8-1, 지금의 중앙시장 내 어물전에 남아 있는 지름 2m의 우물 인근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우물 동쪽에 지은 옥사는 중앙시장과 옥봉동성당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우물은 1966년 2월 진주 공설시장의 대화재로 모든 상가가 불에 타자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사람이 지나다니기에 위험하다는 이유로 콘크리트로 뚜껑을 만들어 덮으면서 우물의 기능을 상실했다고 한다. 다만 어렴풋이 그 우물터 뚜껑 표식이 남아 있어 이곳이 진주 옥 우물이었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진주 진영, 혹은 진주 옥에서 치명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찬문 복자 유해는 마산교구 문산본당 사봉공소 관할 구역 내인 진주시 사봉면 동부로 1751번길 46-6에 안장돼 있다.
또 진주 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윤봉문 복자는 진주 비라실에 안장됐다가 훗날 유족들에 의해 지금의 옥포인 진목정 족박골 산으로 옮겼다가 2013년 4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 3길 69-22로 이장했다.  

▒ 경상 우병영(慶尙右兵營)
조선 시대 경상우도의 병무를 관할하던 관서이다. 조선 전기에는 경상도에 3명의 병마절도사(병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관찰사가 겸임했다. 그리고 낙동강을 기준 삼아 경상도를 동서로 나눈 군사 구역으로서 좌도와 우도를 설정해 좌병사의 병영은 울산에 두고 우병사의 병영은 창원의 합포(지금의 마산)에 두었다가 진주의 촉석성으로 1602년(선조 35년) 이전이 결정되었다. 경상우병영이 진주로 이전된 후 우병마 절도사(무관 종2품)로 하여금 진주목의 목사(문관 정3품)를 겸임하게 함으로써 진주 목사를 따로 발령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우병사를 도와 진주 고을의 일을 전담할 판관(종5품)을 두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후 ‘문명의 고장’인 진주에 무관이 와서 고을을 다스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1635년(인조 13년)에 병사가 목사를 겸하는 조치를 폐지하고 다시 목사를 파견해 우병영과 진주목의 업무를 분리했다. 그 후 우병영은 그대로 진주성 내에 위치하면서 경상우도의 병무 중심지와 영남 서부의 방어 기지로서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성립된 김홍집 내각에 의해 1894년 7월 15일 각도의 병영 혁파와 함께 폐지되었다.

■  순교자

◆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1822∼1866년)  
경상도 진주 허유고개 중촌(현 경남 진주시 사봉면 중촌리)의 양반 집안에서 1822년에 태어난 정찬문 안토니오는 먼저 영세 입교한 아내로부터 뒤늦게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런 다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니, 그때가 그의 나이 42세 때인 1863년이었다. 이후 안토니오는 3년 이상을 열심히 수계하였다. 그러던 중 1866년의 병인박해가 일어나 사방에서 신자들에 체포되기 시작하였고, 그도 그 해 가을에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일가 친척과 평소에 알던 그 지방의 하급 관리가 와서 “배교한다는 말만 하면 끌려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유혹하였지만 그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진주로 끌려간 정찬문 안토니오는 25일 동안 옥에 갇혀 있으면서 종종 관장 앞으로 끌려나가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어느 날 안토니오는 다시 옥에서 끌려나와 무수히 매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다음 다시 옥으로 끌려 들어간 뒤 그날 밤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으니, 이때가 1867년 1월 25일(음력 1866년 12월 20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안토니오가 순교한 뒤 그 시신은 3일 동안 옥에 버려져 있었다. 이후 그의 조카들이 그의 시신을 거두어 고향 인근에 장사를 지낼 수 있었는데, 그때까지도 그의 몸이 굳지 않았고, 얼굴에 화색이 있어 산 사람 같았다고 한다.

◆ 복자 윤봉문 요셉 (1852∼1888년)  
윤봉문 요셉은 경상도 경주 인근에서 윤사우(스타니슬라오)와 막달레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의 가족은 1866년의 병인박해로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양산으로 이주하였다가 보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거제도로 건너가 진목정에 정착하였다. 그의 부친은 그 이전부터 비밀리에 천주교 신앙을 전하고 다녔다. 또 거제도로 이주한 뒤에는 진 요한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입교시켰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윤봉문 요셉은 장성한 뒤 진 아녜스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1887년 겨울에는 경상도 담임 신부인 로베르 신부가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기 위해 거제도를 방문하였다. 이때 요셉은 로베르 신부의 복사로 활동하였는데, 그 해 거제도에서는 15명의 어른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듬해 봄에 박해가 일어나 통영 포졸들에게 요셉은 다른 교우 2명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그 혼자만 통영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배교를 받아들이지 않자 통영 관장은 이 사실을 곧바로 대구 감사에게 보고하였다. 감사는 요셉을 진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따라 윤봉문은 진주로 이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고 그 날 밤으로 옥리들을 시켜 교수형을 집행토록 하였으니, 그때가 1888년 4월 1일(음력 2월 20일)로, 당시 요셉의 나이는 37세였다.

◆ 복자 구한선 타데오(1844∼1866년) 
구한선 타데오는 경상도 함안 미나리 골(현 경남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그는 글을 많이 읽었는데, 우연히 천주교 신자를 만나 교리를 듣고 즉시 이를 받아들여 그로부터 교리를 배운 뒤, 성 다블뤼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약 10년 동안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다가 리델 신부의 복사로 선택되어 거제도 전교에 동행한 적도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리델 신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었다. 갖가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또 옥에 갇혀서는 주요 교리를 설명한 글을 적어 관장의 부인에게 전하였다. 타데오의 글을 읽은 그 부인은 관장에게 그를 석방해 주도록 요청하였고, 이 말을 들은 관장은 화가 나서 그를 옥에서 끌어내도록 하여 혹독하게 매질을 시켰다.
이처럼 모진 형벌을 당한 뒤에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그 형벌로 인해 7일 만에 선종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23세였다. 순교한 뒤 그의 이마에는 ‘품’(品)자 모양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가족들이 고향 인근에 안장하였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진주 진영]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로 178 (중안동 4) 중앙요양병원)
[진주 옥터]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로547번길 8-1 (대안동 8-600) 
지리좌표 [옥터 자리] 북위 35°11′73.0″ 동경 128°05′01.5″ 
연락처 옥봉 성당 (055) 741-2442 FAX (055) 742-4616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옥봉동 성당]
평일 : (월) 오전 6:30 (화) 오후 7:30 (수목금) 오전 10:00, 오후 7:30
주일 : 오전 6:30 10:30 오후 7:30 (토) 오후 4:00, 6:30 
교통편 진주 진영은 진주 중앙요양병원 자리이고, 옛 진주 옥이 있던 감옥은 현재 진주중앙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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