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Home >> 교구별 성지 >> 마산교구

TOTAL ARTICLE : 14, TOTAL PAGE : 1 / 1 회원가입 로그인
구분 서울대교구 | 춘천교구 | 대전교구 | 인천교구 | 수원교구 | 원주교구 | 의정부교구 | 대구대교구 | 부산교구 | 청주교구 | 마산교구 | 안동교구 | 광주대교구 | 전주교구 | 제주교구 |
마산교구 : 통영 관아와 옥 터
테마 분류 :: 성지 지역 분류 :: 마산교구 > 통영
제주의 사도 김기량이 가슴에 대못 박혀 죽임을 당한 순교 터

삼도수군을 관할했던 통영 통제영 중영관아와 옥 터에서 김기량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다.
오늘날로 치면 육군 기지라고 할 수 있는 ‘병영(兵營) 순교지’가 있다면, 해군 기지 격인 ‘수영(水營) 순교지’도 있다. 경상 좌병영인 ‘울산 병영 순교성지’가 대표적 병영 순교지라면, 충청 수영인 오천성(현 충남 보령시 오천항) 인근 ‘갈매못 성지’와 경상 좌수영인 동래(현 부산시 수영구) 수영 ‘장대골 순교성지’는 대표적 수영 순교지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 300년 내내 충청 수영과 경상 좌ㆍ우수영, 전라 좌ㆍ우수영의 삼도 수군을 관할하며 조선 수군의 본영이 된 ‘삼도수군통제영’이 자리를 잡았던 통영 또한 대표적 수영 순교지다.

124위 순교 복자 가운데 ‘제주의 사도’로 불리는 김기량(金耆良, 1816~1867, 펠릭스 베드로)이 삼도수군통제영 내 중영 형소(형리청)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고 나서 옥사함으로써 통제영은 교회사와 인연을 맺는다. 이어 1869년에도 부산 동래 수영 출신 신자 8명이 통제영에 끌려와 참수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한 1887년 경상우수영이 있던 거제에 신앙의 씨앗을 뿌려 ‘거제의 사도’가 된 윤봉문(尹鳳文, 1852~1888, 요셉)이 거제에서 잡혀 통제영에서 문초를 받고 이듬해 2월 진주진영으로 이송돼 순교했다. 이처럼 1895년 폐영되기까지 기록이 남아 있는 순교자만 9명이 피를 흘렸고 더 많은 신자가 잡혀 와 혹독한 문초를 받으면서도 신앙을 증거한 통제영은, 한국 교회의 빛나는 순교성지가 됐다.통제영이 순교지가 된 것은 김기량 복자에게서 비롯된다. 김기량은 1857년 2월 무역차 바다에 나갔다가 표류하던 중 중국 광둥 성 해역에서 구조돼 홍콩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서 교리를 배우고 입교했다. 그는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났음에도 여느 때처럼 무역하러 동료들과 함께 통영 바다에 나갔다가 그곳 게섬(현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에서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된다. 통영 관아로 끌려간 그는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음에도 굳게 신앙을 지켰고, 통영 관장은 대구 경상 감사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한다. 경상 감사는 “김기량 일행을 때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고, 일행은 관아 포졸들에게 혹독한 매질을 당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목숨을 부지하자 관장은 이들을 모두 옥으로 옮겨 교수형에 처한다. 이날이 1867년 1월로, 관장은 특히 김기량에겐 교수형을 집행한 뒤 가슴에 대못을 박아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그 통제영 입구인 망일루에 들어서기 전 큰길 왼쪽에 자리한 중영(중영청), 곧 삼도수군통제사의 부장이자 참모장 격인 우후(虞侯)의 군영인 우후영이 김기량 복자 등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했던 증거 터로 추정된다.

통영 향토사 연구자인 김일룡(68) 통영문화원장에 따르면, 현재 복원된 중영 정문 옆 건물이 통제영에 압송된 신자들이 문초를 받던 형소(형리청)인데, 복원이 잘못 이뤄져 중영청 앞 담장 축대 바로 밑에 세워져야 할 건물이 위에 지어져 버렸다. 옛 통영세무서 자리로, 지금의 통영시 간창골1길 64다. 또한 형소에서 문초를 받던 신자들을 가두고 교수형을 집행하던 ‘중영옥’(중옥)은 형소와 오른쪽 길 건너편으로 70m 거리를 두고 있었다. 지금의 통영시 향토 역사관 아래에 있는 통제영 관리사무소 앞 공터와 길 주변인데, 그 정확한 위치는 통영시 세병로 111로 고증되고 있다. 김일룡 통영문화원장은 “통제영 관리사무소 입구 991.73㎡쯤 되는 공터와 도로변이 바로 김기량 복자가 순교한 중영옥이 자리하고 있던 옥터인데, 아직까지는 천주교회의 순교사적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삼도수군통제사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수군(水軍)을 총 지휘하는 조선 시대의 관직으로 종2품이다. 지휘 관청과 해군 기지로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3년에 초대 삼도수군 통제사로 당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이 임명되었다. 조선의 모든 수군이 아니라 3도(道)의 수군만을 관장하였으나, 3도의 수군이 당시 수군 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므로 오늘날의 해군 참모 총장에 상당한다는 분석이 있다.

▒ 통제영지(統制營址)
통제영은 1593년 삼도수군 통제사 직제를 새로 만들어 전라 좌수사가 겸임한 것에서 비롯된다. 통제사의 본영을 삼도수군 통제영 또는 통제영·통영이라 약칭했으며, 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전라 좌수사 이순신의 한산 진영이 최초다.
1603년(선조 36년)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李慶濬)이 통제영을 이곳 두룡포(頭龍浦 : 현 통영시 관내)로 정하여 통제영터를 닦기 시작하여 2년 만인 1605년(선조 38년) 음력 7월 14일 세병관(洗兵館: 보물 제293호)·백화당·정해정 등을 창건하였다. 1895년(고종32년) 각도의 병영 및 수영이 폐영될 때까지 292년간 존속되었으며 208명의 통제사가 체임되었다.
그 후 일제 강점기 때 일제의 민족정기 말살 정책에 의해 세병관만 남겨 두고 대소 관아 100여 동의 건물들이 모두 헐리고, 이후 학교·법원·검찰청·세무서 등이 들어섰다.

■  순교자

◆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1816∼1867년)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1816년 제주 함덕리(현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함덕리)의 중인 집안에서 탄생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김선달’이라고 불렀다. 그는 배를 타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1857년 2월 18일(음력 1월 24일) 동료들과 함께 무역차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다. 그는 중국의 광동 해역에서 영국 배에 구조되어 홍콩의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로 보내졌으며, 이곳에서 프랑스 선교사들과 휴양중인 조선 신학생 이 바울리노를 만나게 되었다.
바울리노는 김기량에게 천주교 교리를 가르쳤고 그의 신앙심은 얼마 안되어 아주 깊어지게 되었다. 그해 5월 31일 홍콩의 부대표인 루세이유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조선으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그는 가족과 그의 사공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데 열중하였으며, 이후로도 육지를 오가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1866년의 병인박해로 제주의 복음화 노력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박해가 일어난 직후 그는 여느 때처럼 무역을 하러 경상도 통영으로 나갔다가 그곳의 게섬(현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에서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체포되었다.
통영 관아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고 ‘그들을 때려 죽이라’는 명령에 따라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다시 혹독한 매질을 했으나 그래도 그들의 목숨이 붙어 있자, 관장은 그들 모두를 옥으로 옮겨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때가 1867년 1월(음력 1866년 12월)로, 당시 그의 나이는 51세였다. 이때 관장은 특별히 그의 가슴 위에 대못을 박아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 복자 윤봉문 요셉 (1852∼1888년)  
윤봉문 요셉은 경상도 경주 인근에서 윤사우(스타니슬라오)와 막달레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의 가족은 1866년의 병인박해로 재산을 몰수당한 뒤 양산으로 이주하였다가 보다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거제도로 건너가 진목정에 정착하였다. 그의 부친은 그 이전부터 비밀리에 천주교 신앙을 전하고 다녔다. 또 거제도로 이주한 뒤에는 진 요한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입교시켰으며, 이러한 인연 때문에 윤봉문 요셉은 장성한 뒤 진 아녜스와 혼인을 하게 되었다.
1887년 겨울에는 경상도 담임 신부인 로베르 신부가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기 위해 거제도를 방문하였다. 이때 요셉은 로베르 신부의 복사로 활동하였는데, 그 해 거제도에서는 15명의 어른이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이듬해 봄에 박해가 일어나 통영 포졸들에게 요셉은 다른 교우 2명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그 혼자만 통영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다.
배교를 받아들이지 않자 통영 관장은 이 사실을 곧바로 대구 감사에게 보고하였다. 감사는 요셉을 진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고 명하였다. 이에 따라 윤봉문은 진주로 이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고 그 날 밤으로 옥리들을 시켜 교수형을 집행토록 하였으니, 그때가 1888년 4월 1일(음력 2월 20일)로, 당시 요셉의 나이는 37세였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로 27 (문화동 62) 통영세병관
27, Sebyeong-ro, Tongyeong-si, Gyeongsangnam-do 
지리좌표 [세병관 마당] 북위 34°50′86.0″ 동경 128°25′39.9″
[통영 옥 터] 북위 34°50′73.0″ 동경 128°25′38.1″  
연락처 태평동 성당 (055) 645-3336 FAX (055) 645-7793 
홈페이지 태평동 성당 http://www.tpcath.or.kr/ 
미사시간 [태평동 성당]
평일 : (월) 오전 6:30, (수금) 오전 10:30, (화목) 오후 7:30,
주일 : 오전 6:30, 10:30, 오후 7:30 (토) 오후 7:30  
교통편 [승용차] 통영IC를 나와 통영시청을 지나 우회전하여 북신4거리에서 좌회전, 유영초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태평 성당이 있고 그 뒤 언덕 너머에 세병관이 있다. 통영 옥 터는 세병관 앞에서 약 100m 내려가면 세병로 거리에 옥 터 자리가 있다. 
마산교구의 성지
 거제 지세포 성지 : 윤봉문 요셉 묘  천주교 공인 이후에 사적 박해로 교살 당한 순교자 윤봉문 요셉의 묘  거제
 거제 진목정  순교자 윤봉문 요셉 집안이 병인박해 때 피신하여 전교하던 곳  거제
 김해 박대식 빅토리노 묘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한 하느님의 종 박대식 빅토리노의 묘  김해
 김해 신석복 마르코 묘  순교 후에도 고향에 묻히지 못한 하느님의 종 신석복 마르코의 묘  김해
 밀양 명례 성지  마산교구 최초의 본당으로 순교자 신석복 생가가 있는 곳  밀양
 밀양 명례 신석복 마르코 생가 터  하느님의 종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  밀양
 진주 진영과 옥 터  복자 정찬문, 구한선, 윤봉문이 장살과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  진주
 진주 허유고개 정찬문 안토니오 묘  진주 영문에서 형장을 받아 장살 당한 하느님의 종 정찬문 안토니오의 묘  진주
 함안 구한선 타대오 묘  진주에서 장하 치명한 하느님의 종 구한선 타대오의 묘  함안
통영의 맛집
 통영 도남동 : 도남식당 <해물뚝배기>  해물뚝배기로 잘 알려진 식당  통영
 통영 봉평동 : 울산다찌집 <해물주점>  통영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다찌집  통영
 통영 서호동 : 분소식당 <복국>  졸복국과 계절 특미로 유명세를 날리는 손꼽히는 별미집  통영
 통영 항남동 : 한일김밥 <충무김밥>  통영의 현지인들이 최고로 꼽는 충무김밥집  통영
 통영시 무전동 : 굴향토집 <굴요리>  굴 산지 통영에서 가장 유명한 굴요리 전문점  통영
목록
14   마산교구 : 통영 황리 공소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의 손자 신순균 바오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있던 본당
고성에는 병인박해(1866년) 이전부터 교우들이 살고 있었다. 리델(Ridel, 李福明) 신부는 병인박해 전...
13   마산교구 : 창원 웅천 왜성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군종 신부가 머물던 곳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와 있던 스페인 출신의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신부가 1593년 12월 ...
12   마산교구 : 진주 문산 성당
병인박해 때 복음이 전파된 교우촌 성당
진주·함안 지역에 천주교 신앙의 전파되고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60년대 초였다. 경상도 지역을 전담하던...
11   마산교구 : 김해 서성겸(응권) 가족 묘
병인박해 때 박근기 사건으로 순교한 서성겸 가족 묘
경상남도 김해 지방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복음이 전파된 것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이 지방에 귀양 온 이학...
10   마산교구 : 함안 구한선 타대오 묘
진주에서 장하 치명한 하느님의 종 구한선 타대오의 묘
구한선(具漢善, 1844~1866, 타대오)은 1843년 경남 함안 미나리골의 중인 계급 출신으로 출생하였으...
9   마산교구 : 밀양 명례 성지
마산교구 최초의 본당으로 순교자 신석복 생가가 있는 곳
명례 공소는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이다. 명례는 하느님의 종 신석...
8   마산교구 : 밀양 명례 신석복 마르코 생가 터
하느님의 종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
하느님의 종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는 명례 공소와 담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누룩과 소금...
7   마산교구 : 거제 진목정
순교자 윤봉문 요셉 집안이 병인박해 때 피신하여 전교하던 곳
순교자 윤봉문 집안이 병인박해 때 피신하여 전교하던 거제도 옥포리의 진목정은 윤봉문 요셉이 순교한 후부터...
6   마산교구 : 거제 지세포 성지 : 윤봉문 요셉 묘
천주교 공인 이후에 사적 박해로 교살 당한 순교자 윤봉문 요셉의 묘
복자 윤봉문(尹鳳文, 1852~1888, 요셉)은 거제의 사도로서 교회 회장직을 맡아 신자들을 모아 교리를 ...
5   마산교구 : 김해 박대식 빅토리노 묘
대구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 치명한 하느님의 종 박대식 빅토리노의 묘
순교자 박대식(朴大植, 1812~1868, 빅토리노)의 세례명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순교 사실과 무덤...
4   마산교구 : 김해 신석복 마르코 묘
순교 후에도 고향에 묻히지 못한 하느님의 종 신석복 마르코의 묘
누룩과 소금 행상을 하며 가는 곳마다 다른 교우촌 소식을 전해 주었던 하느님의 종 신석복(申錫福, 1828~186...
3   마산교구 : 진주 진영과 옥 터
복자 정찬문, 구한선, 윤봉문이 장살과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
임진왜란 때 울산에 경상 좌병영, 진주에는 경상 우병영이 있었다. 1592년 10월과 1593년 6월에 벌어진 진...
  마산교구 : 통영 관아와 옥 터
제주의 사도 김기량이 가슴에 대못 박혀 죽임을 당한 순교 터
삼도수군을 관할했던 통영 통제영 중영관아와 옥 터에서 김기량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순교하였다. 오늘날로 ...
1   마산교구 : 진주 허유고개 정찬문 안토니오 묘
진주 영문에서 형장을 받아 장살 당한 하느님의 종 정찬문 안토니오의 묘
경남 진양군 사봉면에 위치한 사봉 무촌 마을에는 머리가 없는 유해가 묻혀 있다 해서 무두묘(無頭墓)라 불리...
1
 공지사항 | 자주묻는 질문 | 사이트맵 | 건의 및 불편사항 | 사이트 소개
COPYRIGHT  2004 - 2019  PAX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