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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 가회동 성당 : 첫 미사 봉헌 기념 성당
테마 분류 :: 사적지 지역 분류 :: 서울대교구 > 종로/중구
주문모 신부에 의한 최초 미사 봉헌 터인 ‘계동 최인길의 집 터’ 관할 성당

계동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周文謨, 1752~1801, 야고보) 신부가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으로, 천주교회 창설 초기, 조선 신자들은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성직자의 파견을 요청했고, 구베아 주교는 주문모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주 신부는 조선 신자들의 도움을 받아 1794년 12월 24일에 조선에 입국하였다. 한양에 도착한 주문모 신부는 계동에 있는 최인길 마티아(1765∼1795)의 집에 머물렀는데 주 신부는 여기서 한글을 배웠으며, 1795년 예수부활대축일에는 신자들과 함께 조선에서의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1765년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최인길 마티아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이벽(세자 요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마티아는 입교 초기부터 동료들과 함께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으며, 1790년 윤유일(바오로)이 북경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에는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그가 맡은 일은 선교사가 은신할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후 마티아는 한양 계동(현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집을 마련하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1794년 12월 24일(음력 12월 3일) 마침내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는 이듬해 초 마티아의 집으로 인도되었다. 마티아는 이때부터 주 신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지만, 얼마 안되어 한 밀고자에 의해 신부의 입국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고 말았다. 다행히 주 신부는 마티아의 집에서 빠져 나와 여회장 강완숙(골롬바)의 집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인길은 신부의 입국을 도운 밀사 윤유일과 지황(사바)과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된 날부터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수없이 형벌을 가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자 박해자들은 더 이상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때려 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그 결과 마티아와 동료들은 그날로 사정없이 매를 맞고 숨을 거두게 되었으니, 이때가 1795년 6월 28일(음력 5월 12일)로, 당시 마티아의 나이는 31세였다. 순교 후 그들의 시신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반면에 주문모 신부는 아주 비밀리에,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성사를 베풀었으며, 신자들의 교리 공부와 전교 활동을 위해 명도회를 조직하였고, 교리서도 집필하였다. 이처럼 그가 활동한지 6년이 지나면서 조선 교회의 신자 수는 모두 1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야고보 신부는 자기 때문에 신자들이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귀국을 결심하였다가, ‘나의 양떼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하겠고, 순교함으로써 모든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수를 결심하였다. 주문모 신부가 의금부에서 군문효수형의 판결을 받고 새남터에서 1801년 5월 31일(음 4월 19일) 처형당함으로써 이곳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당시 주문모 신부의 머리는 장대에 매달렸고, 그 시신은 닷새 동안 백사장에 버려졌다가 군사들에 의해 몰래 이장됨으로써 찾을 길이 없게 되었다.

◆ 평화신문 : 서울 가회동본당 2014년 4월 20일 새 성전 봉헌
- 초기 천주교 탄압과 의친왕 세례받은 장소 -


1794년 겨울, 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1752~1801) 신부. 그는 1795년 4월 5일 서울 북촌 최인길(마티아)의 집에서 조선에서의 첫 부활대축일 미사를 드렸다. 북촌한옥마을 언저리였다.

그 북촌한옥마을을 관할하는 서울 가회동본당(주임 송차선 신부)의 신축 성전이 종로구 북촌로 57 북촌한옥마을 중심에 우뚝 섰다. 2011년 12월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4개월 만에 완공된 새 성전은 한복을 차려 입은 선비(한옥)와 외국인 사제(양옥)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듯한 정겨우면서도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연면적 3738.34㎡, 지하 3층, 지상 3층 규모의 새 성전은 한옥을 전진배치하고 양옥은 외부를 목재로 감싸 한옥과 양옥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1층 외부에는 적송으로 지은 사랑방이 신자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과 지역 주민을 위한 만남의 방 역할을 하고 있다. 1층 내부의 상설 역사전시실에서는 한국교회 첫 부활대축일 미사 봉헌과 조선의 마지막 왕족의 세례 사실에 관한 역사적 배경을 각종 유물과 사료 전시를 통해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 미사 경본의 변천사도 전시했다.

2층은 성전과 사제관, 3층에는 보좌신부실과 성가대, 수녀원이 들어섰으며 옥탑층은 하늘마당으로 조성됐다. 또 지하 1층에는 혼인 미사를 위한 신부 대기실과 넓은 폐백실, 강당과 주일학교 교사실이, 지하 2층에는 사목협의실과 예비자 교리방, 지하 3층에는 악기연습실 등이 들어섰다. 설계는 (주)건축사사무소 오퍼스가 시공은 (주)평화종합건설이 맡았다.

1949년 9월에 설립돼 올해로 65주년을 맞는 가회동본당이 담당하던 지역은 조선천주교회의 첫 부활대축일 미사가 봉헌된 최인길의 집과 초대 여성총회장 강완숙(골룸바)의 집 등이 있었던 곳으로, 조선천주교회 초기 역사의 생생한 흔적을 안고 있는 곳이다. 더욱이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1955년 임종 일주일 전에 천주교회에 귀의, 당시 가회동본당 주임 박우철 신부에게서 비오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또 그의 임종 이틀 전에 왕비 김숙도 가회동성당에서 마리아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천주교를 탄압했던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족이 마침내 천주교에 귀의한 오묘한 섭리의 장소가 바로 가회동인 셈이다.

가회동본당의 새 성전은 이같은 신앙의 역사를 독특한 건물 양식을 통해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본당은 20일 오후 2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새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 명도회 (明道會)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에 의해 세워진 평신도들의 교리연구 및 전교단체. 명회(明會)로도 불렸다. 1795년 최초의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하는데 성공한 주 신부는 오래 전부터 북경에 세워져 있는 그와 비슷한 회의 본을 떠서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회’라는 뜻의 이 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는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을 임명하였다. 명도회원들은 우선 자신들이 천주교에 대해 깊은 지식을 얻도록 노력하고 다음으로는 그것을 교우와 외교인들에게 전파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었다. 주 신부는 이 회를 위하여 개최되는 장소, 사회자의 임명, 남녀가 유별될 것 등을 규정해 주었으며 회는 점차 전국으로 보급되어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내용이 엄격한 ‘명도회규’(明道會規)도 주 신부가 직접 만들어 시행케 했는데, 그 ‘회규’ 자체는 오늘날 전해진 것이 없다. 주 신부에 의하여 임명된 명도회의 사회자는 회원들에게 매월 그 달의 주보성인(主保聖人)이 지정되어 있는 회원권을 나누어주었다. 명도회에 가입하는 절차이기도 한 이러한 회원권 제도를 당시의 신자들은 보명(報名)이라고 불렀는데, 보명이란 열심한 신자를 신부에게 알리면 신부가 교회의 성인 이름을 따라 지어 보내고 연말에 가서 신자의 부지런함 여부와 전교한 성과 등을 신부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또한 이에 관해 다른 기록은 “먼저 이름자를 보고하고 신공(神功)을 하는데, 신공을 부지런히 한 사람은 입회가 허락되고 부지런히 하지 않은 사람은 제명된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교회의 지도급 인사였고 명도회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던 황사영(알렉시오)에 의하면 명도회의 집회 장소로는 육회(六會), 즉 여섯 군데가 있었는데, 그 중 다섯 곳은 홍필주, 홍익만, 김여행, 현계흠, 황사영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첨례[축일] 때마다 신도들과 같이 육회에 참석하여 포교에 힘썼으며 육회는 각각 3, 4명 내지 5, 6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사영에 따르면 그가 맡았던 모임은 자신을 필두로 남송로, 최태산, 손인원, 조신행, 이재신 등 6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었으며 그중 조신행과 이재신은 양반, 손인원은 중인이었다고 한다.

■  순교자

◆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1752∼1801년)  
1752년 중국 강남성 소주에서 태어난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는 북경교구 신학교에 입학하여 제1회 졸업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당시 북경의 구베아 주교는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그는 신앙심이 깊은데다가 조선 사람과 닮은 야고보 신부를 조선 선교사로 임명하고, 성무 집행에 필요한 모든 권한을 부여하였다. 야고보 신부는 조선 사람으로 변장하고 12월 24일(음력 12월 3일) 밤 조선에 입국하였다.
주문모 신부는 아주 비밀리에, 그러나 열심히 성무를 집행하였다. 이곳저곳으로 다니면서 성사를 베풀었으며, 신자들의 교리 공부와 전교 활동을 위해 명도회를 조직하였고, 교리서도 집필하였다. 이처럼 그가 활동한 지 6년이 지나면서 조선 교회의 신자수는 모두 1만 명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1801년의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야고보 신부는 자기 때문에 신자들이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귀국을 결심하였다가, ‘나의 양떼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하겠고, 순교함으로써 모든 불행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수를 결심하였다. 그들은 야고보 신부에게 군문효수형을 선고하였고, 이에 따라 신부는 형장으로 정해진 한강 근처의 새남터로 끌려가게 되었다. 1801년 5월 31일(음력 4월 19일) 참수 치명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 복자 최인길 마티아(1765∼1795) 
1765년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난 최인길 마티아는,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이벽(세자 요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1801년에 순교한 최인철(이냐시오)은 그의 동생이다. 마티아는 입교 초기부터 동료들과 함께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데 앞장섰으며, 1790년 윤유일(바오로)이 북경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에는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그가 맡은 일은 선교사가 은신할 거처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후 마티아는 한양 계동(현 서울시 종로구 계동)에 집을 마련하고 선교사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1794년 12월 24일(음력 12월 3일) 마침내 조선에 입국한 주문모 신부는 이듬해 초 마티아의 집으로 인도되었다. 마티아는 이때부터 주 신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지만, 얼마 안되어 한 밀고자에 의해 신부의 입국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고 말았다. 다행히 주 신부는 마티아의 집에서 빠져 나와 여회장 강완숙(골롬바)의 집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인길은 신부의 입국을 도운 밀사 윤유일과 지황(사바)과 함께 체포되고 말았다. 체포된 날부터 포도청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수없이 형벌을 가하였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자 박해자들은 더 이상 그들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때려죽이기로 결심하였다. 그 결과 마티아와 동료들은 그날로 사정없이 매를 맞고 숨을 거두게 되었으니, 이때가 1795년 6월 28일(음력 5월 12일)로, 당시 마티아의 나이는 31세였다. 순교 후 그들의 시신을 강물에 던져 버렸다.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 57 (가회동 30-3)
57, Bukchon-ro, Jongno-gu, Seoul  
지리좌표 북위 37°34′93.3″ 동경 126°59′09.5″  
연락처 가회동 성당 (02) 763-1570 FAX (02) 762-7758 
홈페이지 가회동 성당 http://www.kahoe.or.kr/ 
미사시간 평일 : (화목) 오후 7:00 (수금) 오전 6:30
주일 : 오전 9:00, 11:00 (토) 오후 4:00 
교통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종로 2번으로 세 정거장 가면 가회동 성당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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