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Home >> 교구별 성지 >> 서울대교구

TOTAL ARTICLE : 27, TOTAL PAGE : 1 / 2 회원가입 로그인
구분 서울대교구 | 춘천교구 | 대전교구 | 인천교구 | 수원교구 | 원주교구 | 의정부교구 | 대구대교구 | 부산교구 | 청주교구 | 마산교구 | 안동교구 | 광주대교구 | 전주교구 | 제주교구 |
서울대교구 : 광희문
테마 분류 :: 성지 지역 분류 :: 서울대교구 > 종로/중구
박해 당시 수많은 치명 순교자들의 시신이 내던져 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광희문(光熙門)은 박해 당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체포된 수많은 교우들이 서울 도성 안으로 끌려 들어와서 가혹한 고문과 형벌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치명의 길을 가야 했던 이름 모를 수많은 치명 순교자들의 시신이 이곳 문밖으로 내던져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없이 되풀이되는 박해의 칼바람은 서울과 수원, 용인 등 인근 지역의 교우들을 도성 안으로 끌고 들어왔고,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가혹한 고문 속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다가 끝내 이를 거부함으로써 가차 없이 치명의 길을 가야 했다.
도성 안에서 참수 치명한 순교자들의 시신은 짐짝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이곳에 내다 버려졌으며, 그때마다 문밖은 굴러 떨어진 시신이 너무 많아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순교자들의 시신은 그의 가족이나 친지가 남녀 구별에 따라 옷을 달리 입히고, 동여매서 거적으로 싸는 정도로 겨우 매장되었다. 그러나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은 그대로 버려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846년 병오박해 때 포도청에서 교수형을 당한 김임이 데레사, 우술임 수산나, 정철염 가타리나 성녀의 시신은 광희문 밖에 버려진 후 신자들이 거두어 매장하였다. 1867년에 포도청에서 순교한 송백돌 베드로의 시신 역시 광희문 밖 성벽 밑에 묻혔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서울 성곽은 조선 시대 축성 기술의 변천 과정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일 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호국 정신이 깃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태조 이성계가 건국과 함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 위해 궁궐과 종묘를 지은 뒤 재위 4년만인 1395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도성 둘레에 성곽을 쌓아 이듬해 서울 성곽의 원형을 완성했다.
서울 성곽은 총연장 18㎞에 이르는 대형급 성곽으로 동서남북에 4대문을 두고, 그 사이에 4개의 소문을 두었다. 광희문은 서울 중구 광희동에 있는 조선의 사소문(四小門) 중의 하나다. 광희문은 시구문(屍軀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는데, 이는 조선 시대 때 묘소 관리 제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즉 사람이 죽으면 서울 성곽 안에는 묘를 쓸 수 없도록 하는 제도가 있어서, 일단 그 시신을 서울 성곽 밖으로 이전시켜 묘를 장만하여야 했다. 그리고 시신을 내보낼 때는 서소문과 광희문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광희문을 시구문, 즉 시신을 내어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불렀다.
광희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몇 차례 개축을 거쳐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1915년경에 문루가 자연 붕괴된 이래 홍예만 남아 있었는데 1966년에는 문 북쪽의 성곽 일부를 철거하고 도로를 확장하였다. 그후 1975년 서울 성곽을 다시 옛 모습대로 수축할 때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여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당시 퇴계로 확장 공사로 원래 위치보다 15m 남측으로 밀렸다.

◆ 사소문(四小門)
조선시대 서울 도성에 동서남북에 사대문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사소문을 배치하였다. 사대문은 동쪽에 흥인지문, 서쪽에 돈의문, 남쪽에 숭례문, 그리고 북쪽에 숙정문이다. 사소문은 사대문 사이에 나 있던 소문(小門)을 말한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동북쪽에 홍화문(弘化門 : 東小門), 동남쪽에 광희문(光熙門 : 水口門), 서남쪽에 소덕문(昭德門 : 西小門), 서북쪽에 창의문(彰義門)을 세웠다.  
그중 동소문은 1484년(성종 15)에 창경궁을 건축하고 그 동문을 홍화문이라 하였으며 1511년(중종 6)에 혜화문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1816년(순조 16)에 중수하고 1869년(고종 6)에 보수하였으며, 1928년에는 문루를 헐고 석문만 남겨 두었는데 그 후 전차를 부설하면서 석문마저 철거하여 지금은 그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수구문은 1711년(숙종 37) 새로이 석문만 건축하고 9년 후인 1720년에는 문루를 지어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1975년 도성 복원 공사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였다. 광희문 이외에 1457년(세조 3) 지금의 장충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따로 남소문을 축조하였으나 1469년(예종 1)에 풍수지리설에 따라 폐쇄되었다.
서소문은 1738년(영조 14)에 석문을 개축하고 1744년 문루를 건축한 뒤 소의문으로 개칭하였으나 1914년 도시 계획 때 철거되었다. 창의문은 1413년(태종 13)에 폐쇄되었으나, 1741년(영조 17) 성문을 다시 고쳐 짓고 인조반정 공신의 명단을 걸게 하였는데 지금도 남아 있으며 자하문이라고도 한다.

■  서울 성곽길 복원, 도심 걷기문화 새 지평 열다
걷고 싶은 도심 숲길, 600년 역사의 서울성곽길이 온전히 시민의 품에 되돌려진다. 녹색연합은 높은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에서 자연과 역사, 문화를 느끼며 즐겁게 걸을 수 있는 “서울성곽 순례길 - 걷고 싶은 서울,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걷기”라는 시민들을 위한 안내서(지도)를 발간했다. 서울성곽길 전체를 대상으로 순례길을 완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 안내서는 그 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되었던 18.2km의 서울성곽길을 지난 1년 간 직접 걸어서 조사하고, 시민참여를 통해 모니터링한 결과로서 더욱 의미가 있다.

녹색연합이 발간한 이번 안내서는 서울성곽길을 크게 4구간으로 나누고, 주변 문화, 예술, 상권 등과 어우러져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하루를 즐겁게 걸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서울성곽이 현대의 삶과 단절된 역사가 아닌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하나의 예로 2구간인 ‘장충체육관 ~ 혜화문 (약 5.5km, 2시간 소요)’ 구간은 “북악의 좌청룡, 낙산 - 과거와 현대의 공존, 예술과 패션을 만나다”를 주제로, 서울성곽길을 걸은 후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현대 패션과 대학로의 연극을 즐길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서울성곽을 처음 걷는 사람들도 지도만 갖고 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소실된 구간 등에 대한 세부지도와 대중교통 이용 방법도 상세히 실었다. 어린이나 어르신들에게 비교적 수월한 걷기 코스를 안내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고 있다. 기존의 관광지도와 달리 우리나라 전통의 조각보를 연상시키는 정감있고 따뜻한 느낌을 살려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인 서울성곽의 가치와 의미를 표현했다.

서울성곽은 서울의 4대문을 잇는 옛 한양의 도성으로 현재, 약 2/3가 복원되었고 나머지 구간도 복원 중이거나 복원될 계획이다.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을 잇는 순례길은 약 23km(서울성곽 전체 길이 18.2km)이다.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 흔적이 전혀 없는 구간, 흔적만 겨우 남은 구간을 뺀 나머지는 성곽을 따라 탐방할 수 있다. 소실된 구간은 안내서를 참조하면 된다. 서울성곽길의 대표적 구간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장충동 구간으로, 지난 해 녹색연합 ‘서울성곽 순례’에 참가한 시민들이 “대체로 코스의 길이나 난이도 등이 무난해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겠다”면서, “도심에 이런 길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2007년 4월 일부 복원된 서울성곽길 중 말바위쉼터~숙정문~창의문 구간이 전면 개방되었다. 이에 따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지만, 서울성곽 전체에 대한 관심과 구체적 코스에 대한 인식은 낮다. 녹색연합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서울성곽 전체를 탐방할 수 있도록 주요 관광 안내소, 탐방 안내소, 학교 등 서울 곳곳에 안내서를 배포할 계획이다. 또 서울시나 문화재청 차원에서 서울성곽의 가치를 알리고 시민들의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역사·문화·생태 해설판 설치, 주요 지점 쉼터 제공, 고정적인 탐방프로그램도 제안할 예정이다.
걷기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서울 근교의 북한산, 관악산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인해 주요 등산로는 물론 그 주변부 훼손과 생태계 파괴가 매우 심각하다. 녹색연합은 자연과 문화, 역사 탐방을 접목한 걷기를 통해 정상정복, 종주중심의 산행문화를 개선하고, 바람직한 생태여가 문화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순례길을 발굴할 것이다. 서울성곽길 걷기는 등산인구를 분산시키고 단순한 걷기를 넘어 ‘역사·문화·생태의 공존’을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시민들은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으로 이어지는 환생태축을 체험하면서 생태축 보전의 중요성을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 제1회 광희문성지 학술심포지엄,
- 가난하고 이름없는 순교자의 얼 깃든 거룩한 땅 -
- 1801~1879년 794명 거쳐가 광희문성지 조성 힘써야 -


794명.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79년 기묘박해까지 의금부ㆍ포도청ㆍ형조 전옥에서 희생돼 광희문 밖에 버려지거나 묻힌 천주교 신자 수다. 이들 가운데 성인 20위, 복자 5위, 하느님의 종 25위가 있다.
2017년 11월 25일 서울 광희문 성지 순교자현양관(담당 한정관 신부)에서 열린 제1회 광희문성지 학술 심포지엄에서 794명의 명단이 최초로 공개됐다. 광희문성지가 ‘한국 천주교회의 카타콤바’로 불려 온 실체가 문헌으로 처음 밝혀졌다.
‘광희문 성지의 실체 규명과 순교자 영성’을 주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에서 서종태(스테파노, 전주대) 교수는 794명 명단을 제시하면서 “이들은 광희문 성문 밑에서부터 오늘날 왕십리 지역인 광희문 끝까지 버려지고 묻혔다”고 했다.
‘박해시기 순교자 시신의 유기 및 매장과 광희문 밖’이라는 제목의 주제 논문을 발표한 서 교수는 “박해 시기 내내 좌ㆍ우포도청, 형조의 전옥, 의금부 등에서 순교한 천주교인은 거적때기에 싸여 밤에 광희문 밖에 버려졌다”고 했다.
794명 대부분은 교수형을 당하거나 매 맞아 죽었다. 서 교수는 “1866년 병인박해 이후 광희문 밖에 버려지거나 묻힌 천주교인의 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병인양요와 남연군(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 도굴 사건으로 박해가 격화됐기 때문”이라며 “당시 천주교인이 포도청 옥에 가득 차 빈자리를 만들기 위해 교수형으로 처형하기 바빴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794명 중 거주 미상인 35명을 제외한 759명 가운데 지방 거주자가 452명(60%)으로, 서울 거주자 309명(40%)보다 더 많다”며 “대부분이 신분이 낮고 가난한 이들이었다”고 덧붙였다.
조광(이냐시오) 국사편찬위원장은 “가톨릭 교회는 무덤을 중심으로 순교자에 대한 공경이 이뤄지고 성지가 조성됐는데 이런 교회의 전통을 볼 때 광희문 밖은 교회와 학계의 주목을 받기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장은 덧붙여 “794명 가운데 관변 측 사료에 의하면 배교자들도 있다”며 “이들이 배교로 기록됐다 하더라도 죽는 순간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모르기에 이들 모두도 죽음에 이르도록 주님을 고백한 신앙인으로 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광희문 밖에 유기 또는 매장된 천주교 순교자들이 수감, 신문, 처형, 매장에 대한 고찰’을 주제 발표한 원재연(하상 바오로, 전주대) 교수는 “천주교인은 엄청난 불법적 남형을 당했다”며 “가난하고 힘없는 민초들의 최소한의 권익을 위해 마련된 18세기 후반의 법제 조항들은 천주교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광희문 밖 순교지와 순교자 영성’을 주제 발표한 강석진(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는 “광희문 밖에 버려진 순교자들은 가장 가난한 순교자들이요,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은 순교자들”이라고 정의했다. 강 신부는 “광희문 밖 순교자들이 보여 준 삶과 신앙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그 마음에 따라 이웃에게 사랑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갔음을 알 수 있다”며 “그들은 박해자 앞에서 신앙을 증언한 후 참수형을 받고 죽는 것을 최고의 신앙 행위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광희문성지 담당 한정관 신부는 “광희문 성지는 순교자들이 살던 당대 성곽과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어 순교자들의 삶과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역사 공간”이라며 “이번 심포지엄을 통해 광희문 밖이 명실상부한 한국 천주교회의 카타콤바라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기뻐했다.
이날 심포지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염수정 추기경은 “광희문 밖은 가난하고 이름 없는 순교자들이 버려지고 묻힌 거룩한 터”라며 “광희문성지 조성을 통해 우리 신앙의 실체를 밝혀 가고 신앙생활의 본모습을 찾아가자”고 격려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 12. 03, 1442호]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 찾아 미사하고 기도하자
현양관 축복… 현양 미사는 매주 금·토·일 봉헌


서울대교구 광희문 밖 순교성지(담당 한정관 신부) ‘광희문 천주교 순교자 현양관’ 축복식이 2018년 4월 8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거행됐다.
서울 퇴계로 348 광희문 건너편에 위치한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은 좌ㆍ우 포도청과 의금부, 전옥서에서 순교한 후 광희문 밖에 버려진 794위 순교자를 기리는 공간이다. 이들 794위 순교자 가운데 최경환(프란치스코)ㆍ민극가(스테파노)ㆍ현석문(가롤로) 등 성인 20위와 심아기(바르바라)ㆍ김이우(바르바라) 등 복자 5위, 황석지(베드로)ㆍ최영수(필립보)ㆍ이윤일(안토니오) 등 하느님의 종 25위가 포함돼 있다. 이처럼 광희문 밖은 한국 천주교에서 가장 많은 순교자의 시신이 버려지고 매장된 성지다.
광희문 천주교 순교자 현양관은 연면적 149.83㎡, 지상 4층 규모의 철근 콘크리트조 건물로 성당과 전시실,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4층에 마련된 성당에는 제대와 김대건 성인의 유해가 안치돼 있으며 매주 주일과 금ㆍ토요일 오후 3시에 순교자 현양 미사가 봉헌된다.
이날 축복식을 주례한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조선 시대 시신을 내보내던 죽음의 문이었던 ‘광희문’(光熙門)이 순교자들을 통해 비로소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쁨의 문이 됐다”고 축하했다.
염 추기경은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믿고 고백하고 신앙을 나누면서 부활을 살았던 분”이라면서 “광희문 순교자 현양관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온전히 삶을 봉헌한 순교자들의 영성을 배워 우리 각자의 삶과 신앙을 쇄신하는 자리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담당 한정관 신부는 “모든 순교자와 우리 살아 있는 형제자매들이 영적으로 교류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순교자들의 깊은 영성을 되새길 수 있는 거룩한 장소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축복식에는 최창화 몬시뇰을 비롯한 교구 사제단과 신자 200여 명이 참여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 04. 15. 1460호]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 2가 105-32
105-32, Gwanghee-dong 2ga, Jung-gu, Seoul 
지리좌표 북위 37°33′87.2″ 동경 127°00′60.5″ 
연락처 신당동 성당 (02) 2237-1784, FAX (02) 2238-1619 
홈페이지 신당동 성당 http://www.sohwa.org/ 
미사시간 [신당동 성당]
평일 : (월수금) 오전 6:00, (화-토) 오전 10:00, (화목) 오후 7:00,
주일 : 오전 6:00, 9:00, 11:00, 오후 7:00 (토) 오후 4:00, 7:00  
교통편 [지하철] 동대문 운동장 5호선 3번 출구, 2호선 3번 출구, 4호선 3번 출구에서 한양 중·공고 쪽으로 나가면 학교 앞 길 건너편에 광희문이 위치해 있다. 
서울대교구의 성지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모신 사제 성소의 요람  종로/중구
 경기 감영 터  하느님의 종 조용삼 베드로가 옥중에서 세례 받고 신자들을 감동시킨 순교 터  종로/중구
 김범우 토마스 집 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증거자 김범우의 집 터  종로/중구
 노고산  새남터에서 순교한 세 분 성직자 유해가 모셔져 있던 곳  마포/용산
 당고개 순교 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영광의 땅  마포/용산
 명동 주교좌 대성당과 지하 묘역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며 순교자 유해가 모셔진 곳  종로/중구
 삼성산 성지  새남터에서 순교한 세 분 성직자 순교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던 곳  동작/관악/금천
 새남터 순교 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많은 성직자, 지도자들이 치명한 순교 성지  마포/용산
 서소문 밖 순교 성지  44분의 성인 성녀와 25분의 하느님의 종을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순교지  종로/중구
 송 마리아 묘비  조선 왕실의 첫 순교자 송 마리아 묘 터와 묘비  마포/용산
종로/중구의 여행지
 경복궁(景福宮)  규모와 건축미를 자랑하는 조선의 정궁  종로/중구
 남산골 한옥마을  전통정원과 전통한옥 다섯 채를 옮겨 조성한 한옥마을  종로/중구
 덕수궁 (德壽宮)[경운궁(慶運宮)]  근대식 전각과 서양식 정원 등 중세와 근대가 잘 어우러진 궁궐  종로/중구
 북촌 한옥마을  서울 600년 역사와 함께 해온 전통 거주 지역  종로/중구
 종묘(宗廟)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  종로/중구
 창경궁(昌慶宮)  상왕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  종로/중구
 창덕궁(昌德宮)  조선시대 궁궐의 후원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궁궐  종로/중구
종로/중구의 맛집
 서울 종로구 : 광화문, 종각, 서대문 주변 맛집들  성지 : 의금부, 형조, 우포도청, 전옥서, 경기감영 주변  종로/중구
 서울 종로구 : 종로, 을지로 3⋅4가, 혜화동, ...  성지 : 좌포도청, 이벽의 집터, 종로성당 주변, 가톨릭대학 성신교정 성당, 가회동성당 주변  종로/중구
 서울 중구 : 을지로 2가, 명동 주변 맛집들  성지 : 명동성당, 김범우 집터 주변  종로/중구
 서울 중구 : 을지로 6가 주변 맛집들  성지 광희문 주변  종로/중구
 서울 중구 : 의주로, 중림동 주변 맛집들  성지 : 서소문밖 성지, 중림동성당 주변  종로/중구
목록
27   서울대교구 : 한국 순교자 124위 시복 터
2014년 8월 16일에 열린 124위 한국 복자 시복식 터
한국 천주교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 순간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2014년 8월 16일 ...
26   서울대교구 : 석정골 보름 우물
주문모 신부가 세례 줄 때 사용한 우물
서울 북촌 종로구 계동 25번지에 ‘석정(石井) 보름 우물’이 있다. 우물이 돌로 되어 있어서 동네 이름을 ...
25   서울대교구 : 새남터 순교 성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많은 성직자, 지도자들이 치명한 순교 성지
새남터는 첫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하여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순교한 성직자 14명 중 11명...
24   서울대교구 :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터
1984년 5월 6일에 열린 103위 한국 성인 시성식 터
1984년 5월 6일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집전으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신앙대회...
23   서울대교구 : 이벽 세례자 요한의 집 터 : 한국 천주교회 첫 세례식 터
한국 천주교회 첫 세례식이 거행된 수표교 이벽의 집 인근 기념표석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서울시의 협조를 얻어 1784년 겨울 수표교 인근 이벽(李檗, 세례자 요한, 175...
22   서울대교구 : 김범우 토마스 집 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증거자 김범우의 집 터
한국 천주교 최초의 증거자로 불리었고 최근에는 순교자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김범우(金範禹, 1751~1787, 토...
21   서울대교구 : 의금부 터
조선 시대 사법 기관으로 천주교 지도자들이 국문을 받던 곳
조선 시대 법을 다루는 사법 기관은 일반적으로 형조, 한성부, 사헌부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외에 노비의...
20   서울대교구 : 형조 터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압송되어 문초를 받었던 신앙증거 터
조선시대의 중앙 행정조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의정부와 6조이다. 의정부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
19   서울대교구 : 전옥서 터
조선 시대에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
조선 시대에 죄인을 수감하였던 감옥으로 문종 때 전옥서로 개칭하였다. 전옥서는 감옥과 죄인에 관한 사무를...
18   서울대교구 : 우포도청 터
한성부의 치안을 담당하던 관서로 수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던 곳
좌·우포도청은 조선 중종 때 인 16세기 초 서울과 인근 지역의 포도와 순라를 담당하도록 설치한 기관으로,...
17   서울대교구 : 좌포도청 터
한성부의 치안을 담당하던 관서로 수많은 신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던 곳
좌·우포도청은 조선 중종 때 인 16세기 초 서울과 인근 지역의 포도와 순라를 담당하도록 설치한 기관으로,...
16   서울대교구 : 종로 성당 : 포도청 순례지 성당
좌⋅우포도청 순교터 순례지 성당
조선시대의 좌 ·우포도청은 서울의 중요한 순교터일 뿐 아니라 한국 천주교회 최대의 신앙 증거터이다. 또한 ...
15   서울대교구 : 가회동 성당 : 첫 미사 봉헌 기념 성당
주문모 신부에 의한 최초 미사 봉헌 터인 ‘계동 최인길의 집 터’ 관할 성당
계동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선교사인 주문모(周文謨, 1752~1801, 야고보) 신부가 조선 땅에서 첫 미사...
14   서울대교구 : 노고산
새남터에서 순교한 세 분 성직자 유해가 모셔져 있던 곳
노고산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Imbert, 范世亨, 라우렌시오, 1796~1839) 주교...
13   서울대교구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모신 사제 성소의 요람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이 있는 성신교정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신학연구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
12   서울대교구 : 경기 감영 터
하느님의 종 조용삼 베드로가 옥중에서 세례 받고 신자들을 감동시킨 순교 터
서대문 밖에 있던 경기 감영은 1800년 부활 축일에 여주에서 체포된 예비신자 하느님의 종 조용삼이 옥중에...
  서울대교구 : 광희문
박해 당시 수많은 치명 순교자들의 시신이 내던져 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광희문(光熙門)은 박해 당시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체포된 수많은 교우들이 서울 도성 안으로 끌려 들어와서 ...
10   서울대교구 : 당고개 순교 성지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영광의 땅
당고개 성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함으로써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
9   서울대교구 : 명동 주교좌 대성당과 지하 묘역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며 순교자 유해가 모셔진 곳
명동 성당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이며 한국 교회 공동체가 처음으로 탄생한 수표교의 이웃이자 여러 순교자...
8   서울대교구 : 삼성산 성지
새남터에서 순교한 세 분 성직자 순교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던 곳
서울 관악구에 있는 삼성산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한 세 명의 성직자인 ...
12
 공지사항 | 자주묻는 질문 | 사이트맵 | 건의 및 불편사항 | 사이트 소개
COPYRIGHT  2004 - 2020  PAX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