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와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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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 완주 배재 성당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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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초기 성당이며 수류 본당의 전신

전주교구 초기 성당이며 수류 본당의 전신이다. 배재는 모악산 자락으로 전북 완주군 탑선 마을 쪽에서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용사를 거쳐 금산사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해 있었다. 박해 후 교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전주 본당과 함께 1889년 봄 최초로 설립된 본당이다.

박해가 끝나고 교회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1889년부터 1909년까지 전라북도에는 7개 본당이 설립되어 전라북도와 충남, 경남 일부를 포함해서 13,614명의 교우와 169개의 공소를 관리하였다. 1889년 봄, 전주 본당과 금구 배재 본당, 1891년 10월 10일 고산 본당, 1897년 나바위 본당, 1900년 진안 어은동 본당, 1903년 정읍 신성리 본당 그리고 1909년 9월 24일 안대동 본당이 그것이다.
1889년 금구 배재에 본당 사목활동을 시작한 신부는 베르모렐(Vermorel, 張若瑟, 1860~1937, 요셉) 신부였다. 당시 금구군으로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구 배재로도 불리었다. 그는 고산 빼재에 거주하면서 1888년 가을에 전라도 남쪽 지방의 공소 판공을 시작하였는데 1889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 훨씬 지나서 끝마쳤다.

그는 판공을 마치고 금구 배재로 정주지를 옮겨 본당을 시작하였다. 본인뿐만 아니라 교우들도 간절히 원했고 또 이 공소에는 좋은 회장이 있었고 외교인들과의 문제도 없었거니와 사목상으로도 그가 담당한 공소들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재는 모악산 자락으로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탑선 마을 쪽에서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용사를 거쳐 금산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뒤에는 깊고 넓은 늘안이 골짜기가 있는데, 거기에는 일명 쉰질(50丈) 바위(승천 바위)로 불리는 암벽이 있다. 그리고 암벽면에는 ‘최탁덕과차(崔鐸德過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최탁덕은 드게트(Deguette, 崔東鎭, 崔鎭勝, 崔兀乭, 1848~1889, 빅토리오) 신부를 말한다. 드게트 신부는 1878년 리델(Ridel, 李福明, 1830~1884, 펠릭스) 주교가 체포된 후 이곳에 숨어 있었고, 배재에 숨어 있는 동안 예수승천 대축일을 이곳 쉰질 앞에서 신자들과 축일을 지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이것을 기념하여 신자들이 그처럼 새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1882년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1855~1893, 루치아노) 신부 담당으로 공소가 설립되었다.
1893년 4월 베르모렐 신부가 용산신학교로 떠나고, 후임에 죠조(Jozeau, 趙得夏, 1866~1894, 모세)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1894년 7월 29일 동학란에 희생되어 순직하고 공석 중이다가 1895년 5월 라크루(Lacrouts, 具瑪瑟, 1871~1929, 마르첼리노) 신부가 부임하였다. 부임하고 보니 심산궁곡에 신자는 모두 20명에 불과해 그해 가을 판공을 끝내고 본당을 배재에서 수류로 옮기었다.
이것이 오늘날 수류 본당이 생긴 과정이다. 연도상으로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인 약현 성당보다도 빠르다. 하지만 아쉽게도 1895년 10월 수류로 본당이 이전 되면서 쇠퇴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 관심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 탁덕(鐸德)
신부(神父)를 지칭하는 옛말이다. 원뜻은 덕(德)을 행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사탁(司鐸), 서사(西士), 신사(神士) 등과 함께 신부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 베르모렐(Vermorel, Joseph, 張若瑟, 1860-1937) 신부
베르모렐 요셉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원으로 1888년 1월 14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 뒤 1918년에 맹장수술을 받으러 북경에 갔던 일을 제외하고는 50년 동안 한번도 한국을 떠난 적 없이 오직 이 땅에 복음을 전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한국에 도착하자 곧 첫 임지인 남부 지방으로 내려가, 그는 서울에서는 이미 볼 수 없게 된 상복을 입고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계속하였다. 1893년 리우빌(Liouville) 신부가 선종하자 그 후임으로 용산신학교에 부임하여 3년간 교편을 잡았다.
이어 원산(元山) 본당을 1년간 맡고 있을 때 간도(間島)에서 찾아온 김영렬(金英烈)이라는 청년에게 영세를 주어, 간도에 돌아가 복음을 전파케 함으로써, 장래의 연길교구가 탄생하게 하였다.
1897년에는 강경(江景) 가까이 있는 나바위에 본당을 건립하였다. 1911년 대구교구가 분립되면서 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1919년 드망즈(Demange) 주교가 주교회의 참석차 로마로 가 있을 동안 잠시 주교좌 성당에 가 있었을 뿐 1931년까지 나바위 본당을 떠나지 않았다. 1931년에 연로하여 본당사목직을 떠나 성 바오로 수녀원의 지도신부가 되어 고아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 여생을 바치다가 1937년 5월 31일 77세로 선종하였다.

◆  죠조(Jozeau, Moyse, 1866∼1894.  趙得夏) 신부의 순직
1893년 4월 22일 배재 성당의 베르모렐 신부의 후임으로 부임한 죠조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에 일어난 동학 농민 전쟁으로 전라도 지방의 신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배재 본당 역시 그 피해가 심각하여 죠조 신부는 농민군들에게 여러 차례 습격을 당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한 교우촌이 완전히 전멸되었고, 교우들은 깊은 산중으로 숨어 들어가는 등 상황이 위급해지자 뮈텔 주교에게 전보를 쳐 도움을 청하였다. 주교는 피신하거나 아니면 서울로 올라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죠조 신부는 7월 27일 뮈텔 주교와 프랑스 공사에게  전라도 교회가 겪고 있는 이 사정을 보고하기 위하여 상경하던 중 성환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여 공주 방향으로 도주하던 청군 패잔병들에게  체포되어 공주 금강 장깃대 나루터의 모래사장에서 마부 정보록(바오로)과 함께 청군의 칼에 목이 잘렸다. 때는 1894년 7월 29일 오후 5시경이었다. 그의 나이 겨우 29세였다. [대전교구 장깃대 나루 참조]

■  찾아가는 길

■  순례지 정보
소재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배재(梨峙)골
Anduk-ri, Gui-myeon, Wanju_Gun, Jeollabuk-do  
지리좌표 북위 35°42′94.0" 동경 127°04′53.8" 
연락처 수류 성당 (063) 544-5652 FAX (063) 544-5654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수류 성당]
평일 : (월수금) 오전 5:30, (화목) 오후 7:30
주일 : 오전 10:00 (토) 오후 7:30  
교통편 배재는 모악산 자락으로 전북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탑선마을 쪽에서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용사를 거쳐 금산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금산사나 중인동(중인리)에서 오르는 길을 선택한다. 반대편 탑선 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거리가 짧아 약 30분 걸린다. 이 길은 안내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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