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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교구 : 여주 도전리 공소
테마 분류 :: 사적지 지역 분류 :: 수원교구 > 여주
구전에 의하면 1800년대 초부터 시작된 교우촌

도전 공소의 역사는 구전을 통해서만 전해 내려오고 있다. 수원교구 북여주 본당 소속 ‘도전 공소’의 원래 이름은 ‘원심이 공소’다. 공소가 위치한 지역의 현재 지명인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도전3리’에서 그 이름을 따다가 도전 공소로 부르고 있지만, 마을주민에게 익숙한 이름은 오래 불러 입에 익은 ‘원심동’, ‘원심이’ 이다. 세월 흐름에 따라 소속 교구도 원주-서울-수원으로 변경되었다.

‘도전 공소’의 역사는 마을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의 기억의 조각을 모아 완성된다. 여주본당 설립 50주년 기념집 ‘남한강의 순례자’에 따르면, 구전을 바탕으로 여주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1800년대 초부터 시작된 공소의 설립부터이다. 뮈텔 주교의 일기에 의하면 뮈텔 주교는 1891년 10월 10일 강원도 원심이(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도전리) 본당을 폐지하고 이곳에서 사목하던 우도 신부(바오로, Oudot, 오보록 吳保祿, 1865∼1913)를 고산지방 차돌배기(현 백석) 본당 주임으로 발령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도전 공소는 한 때 본당이었으며 1891년 이전에 공소가 설립된 것은 확실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한양 서소문 밖 이조 관리였던 정 도마는 동생과 아내, 두 아들 등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났다가 지금의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인 구제에 정착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아들 형제가 헤어지고, 아내가 죽는 등 계속된 탄압에 작은 아들 안토니오만 데리고 원심이로 향한 정 도마는 한 바위 위에서 묵주신공을 바쳤고, 훗날 사람들은 그 바위를 묵주 줄을 굴렸던 ‘줄 바위’라 이름 붙였다. 세월이 흘러 안토니오는 다시 아들 셋을 뒀는데, 이들 삼형제 중 인품과 덕망을 갖췄다는 둘째 아들 재영(아우구스티노)이 ‘도전 공소’ 초대회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안토니오와 아들 삼형제는 붙잡힐 것을 염려해 성을 정 도마의 외가 전주 이씨 성을 딴 이씨로 바꾸었다.
이 아우구스티노 회장은 두터운 신망으로 주위 사람들의 모범이 됐고. 마을 개간과 농사짓는 법을 보급하기도 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강천면은 ‘원심이’ 개발 공로를 인정, 산을 내주고 9일장을 치르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울러 그는 임종시 허리에 33마디로 매듭지어진 새끼줄을 두르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마치 예수님의 생애를 상징한다고 일컬어진다. 그는 이 새끼줄이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굴렸던 것으로 보인다.

공소 건물은 1957년 3월 22일 지었다. 대지면적 1,175㎡에 지상 1층 규모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원래는 지붕이 목조 트러스 구조였고 내부는 흙, 외부는 나뭇가지와 흙으로 마감했으나 이후 위에 슬레이트 판을 덮었다. 골조를 빼고 전반적으로 수리했으며 외관은 석재를 이용한 조적식 구조로 바꾸었다. 한 달에 한두 번 미사를 행하며 항상 개방한다. 지금은 주변 수도회들이 생기면서 공소예절을 하지 않지만, ‘도전공소’는 신심이 두터운 신자들을 바탕으로 왕성한 전례활동과 신앙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약초를 팔아 원주, 양평으로 나가 미사를 봉헌했고, 돈을 모으는 것은 물론, 직접 나무를 캐고, 흙을 발라 1957년 현 위치에 새 공소를 짓기도 했다. 처음 여주 성당을 지을 때도, 공소 식구들의 정성이 배어 있다. 배를 타고, 지게를 지어가며 건축에 필요한 물건들을 날았다. 여성들도 치마, 저고리가 더러워지는 줄도 모르고 벽돌을 지고 다녔다. 지금까지 교구 내외 공소 출신 사제, 수도자도 여럿이다.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한 만큼, 공소 식구들의 단합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2016년 백경태 신부가 공소 담당으로 부임하여 매일 오전 10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우도 신부(Oudot, Paul, 오보록 吳保祿, 1865∼1913)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1888년 9월 22일에 사제 서품을 받고 페낭 신학교에 파견되었으나 더운 기후를 이겨내지 못하여 곧 조선으로 전임되었다. 1890년 10월 24일 조선에 입국한 우도 신부는 1891년 10월10일 전라도 고산 차돌백이(현 백석) 주임으로 발령받아 사목 활동을 하다가 1893년 4월 22일 부산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었으며, 1898년 7월 황해도 매화동 본당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많은 토지를 매입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농민들에게 소작을 줌으로써 전교 활동을 활성화시켜 1899년 한 해 동안 500여 명의 영세자가 배출되는 둥 본당 교세가 크게 신장되었다. 또 우도 신부는 종교 교육과 문맹 퇴치를 목적으로 황해도 지역 최초의 사학(私學)이라고 할 수 있는 봉삼학교(奉三學校)를 설립하였는데,봉삼학교는 남자부와 여자부로 구분되어 남학생들에게는 교리 및 한문을, 여학생들에게는 기도문,한글, 가사(家事) 등을 가르쳤다. 그는 매화동 본당에서 약 15년 동안 사목하면서 전교회, 성의회(聖衣會), 예수 성심회, 성모 성심회, 매괴회 등 여러 신심 단체를 조직하고 성영회(聖嬰會) 사업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우도 신부는 1913년 10월 31일 선종하여 매화동 본당 내에 묻혔다.

■ 찾아 가는 길

■  순례 정보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원심동1길 109 (도전리 421-4)
109, Wonsimdong 1-gil, Gangcheon-myeon, Yeoju-si, Gyeonggi-do  
지리좌표 북위 37°35′25.6″ 동경 127°74′84.1″ 
연락처 [도전 공소] (031) 535-5340 
홈페이지 없음 
미사시간 [도전 공소]
평일 : (월-토) 오전 10:00
주일 : 오전 10:00 
교통편 [승용차] 영동고속도로 여주IC 삼거리에서 여주시로 진입하다가 교리교차로에서 우회전하여 여원로를 따라가다가 이호대교를 건너 이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하여 나오자마자 우회전하여 강문로, 곱새기로를 따라 도전리 방면으로 좌회전하여 도전보건진료소를 조금 지나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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